<해외논단>펜타곤의 고민 돈없이 세계의 파수역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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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빌 클린턴 美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새로운 도발에 강력 대처한 것은 미국이 앞으로도 상습 도발국에 대해 변함없는 평화유지 수단을 사용하겠다는 신호탄이다.
그러나 걸프전 당시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미국은 군비축소를 중단하든지 세계의 파수꾼 역할을 자제하든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지금우리 군대는 한국과 쿠웨이트 방어전략에 있어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알만한 美국방부 관리들은 내심 이같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공개석상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대중들은 이라크의 위협에 재빨리 대처한 클린턴에게 박수갈채를보냈다.그러나 클린턴은 과연 언제,어디까지 세계 新질서 유지라는 이름아래 미군을 파병해야 하느냐는 미묘한 질문에 답해야 할시점에 이르렀다.
쿠웨이트 국경지역으로 공화국 수비대 1만4천명 병력을 이동시킨 후세인은 클린턴으로 하여금 수만명의 병력과 탱크.항공모함.
전투기를 1만마일 이상 이동케 하고 5억달러(약4천억원)이상을낭비시키는데 성공했다.
클린턴은 워싱턴을 요요처럼 마음대로 돌려대는 후세인의 장난을막고 공포에 질린 쿠웨이트인들을 무마하기 위해 91년 설치한 비행금지구역과 흡사한 비무장지대 설치안을 유엔안보리에 상정할 것으로 알려졌다.일견 그럴듯한 발상이지만 러시아 .프랑스.중국등 이번 도발 이전만 해도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를 주장해온 후세인의 친구들이 결코 그러한 구상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이라크외에 요요장난을 즐기는 적성국들은 무수히 많다.
계속 비핵(非核)지대로 유지하겠다고 클린턴 자신이 줄기차게 공언했던 북한의 경우 공산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비무장지대를 넘어올수 있는 전시 상황에 놓여있다.그런 상황인데도 주한(駐韓)미군 숫자는 아이티 파병군보다 조금 많 을 뿐이다.
러시아로부터 다량의 무기를 사들인 이란은 페르시아만 입구를 지키며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제국에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세르비아와 보스니아회교도간의 국지전 또한 언제라도 발칸반도전체에 확산될 소지가 크다.
부시 美 前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 미군규모를 30% 줄였다.지난해 클린턴은 그 규모를 그 이상 축소했다.펜타곤(국방부)은 현재 유례없는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다.소말리아.르완다.걸프전쟁.보스니아사태등 미군이 평화유지 명목으 로 달려가는사이 국방부 찬장은 텅 비어 있다.
군사전문가 데이브 매커디 하원의원(민주당.오클라호마)은『우리의 방위전략은 이제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탄식하면서『허허벌판에 서서 해결사 역할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하고 있다.99년이 되면 국방비는 사상 최저수준인 국민총생산(GNP) 총액의 3%미만으로 떨어지게 된다.전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은유엔 평화유지비의 30%를 부담하고 있다.
빌 클린턴은 지난주 사담 후세인을 내려다보며 마음껏 정의를 과시했다.그러나 펜타곤의 쪼들림과 더불어 미국의 구미에 맞는 국제 분쟁 개입 명분은계속 눈앞에 첩첩이 쌓여 있는 상황이다.
[美워싱턴 포스트紙=本社特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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