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日章旗 달고 모국팀에 恨푼 허즈리의 투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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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요시.』 중국의 오성홍기 대신 일장기를 가슴에 단 허즈리(何智麗),아니 고야마 지레이(小山智麗)의 외마디 일본말이 중국탁구의 자존심을 무참하리만큼 부숴버렸다.
89년 대표팀 탈락의 恨을 품고 일본에 귀화,새롭게 탁구인생을 시작한 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허즈리가 세계최정상을 자랑하는 모국팀 중국을 보란듯이 연파하고 아시안게임 여자단식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84,86,88년 연속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何가 일본인으로 변신하게 된것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을 둘러싸고 중국팀 내부에서 벌어졌던 인사갈등이 주원인.
당시 장셰린(張謝林)감독은 何의 컨디션이 나쁘다고 판단,신예인 천징(陳靜.현재 대만)을 기용하고 何를 대표팀에서 탈락시켰다. 그러나 何측의 주장은 다르다.중국탁구계를 양분하는 상하이방(上海幇)과 후베이방(湖北幇)간의 싸움에서 상하이방으로 분류된 자신이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何는 마치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기라도 하듯,전날 8강전에서 자신의 대표탈락을 가져왔던 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천징을 3-1로 간단히 꺾어버렸다.
먹이에 굶주린 늑대처럼 포효하며 테이블을 휘잡은 何는 이날 준결승에서 세계2위 차오훙(喬紅)을 3-1로 따돌리더니 결승에선 세계최강의 작은마녀 덩야핑(鄧亞萍)마저 대접전끝에 3-1로격파,만리장성 중국탁구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그것도 자신의 일본행을 가져왔던 장셰린 감독이 鄧의 벤치를 보는 바로 그 앞에서 한맺힌 복수의 라켓을 휘두른 것이다.
20-22,21-19,22-20,21-16의 극적인 역전승이이뤄지는 순간 何는 벤치로 돌아와 그동안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남편이자 코치인 고야마 히데유키(小山英之)가 위로의 손길을 뻗는 것과 대조적으로 1m지척에 있던 장셰린 감독은 쓸쓸히 가방을 챙겨들었다.
[히로시마=劉尙哲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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