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상>흔들리는 실명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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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확보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정책의 일관성(consistency)이다.정책이 일관성을잃고 정책외적인 요인에 의해 변질될 때 정책의 신뢰도는 확보될수 없다.
과거에도 숱한 정책들이 시행단계에서 의 신뢰 확보에 소홀했던탓으로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정책의 입안.채택 단계에서 제시됐던 각종 논리와 명분들이 시행단계에 가서는 또 다른 논리와 명분으로 약화.변질돼서는 국민들이 미래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할 도리가 없다.
요즘 공직자의 비리척결을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금융 계좌(計座)에 대한 추적 범위의 확대에서도 정말 걱정되는 것은 바로이 부분이다.공직자의 비리척결,나아가 사회의 부패고리를 끊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금융계좌의 추 적범위 확대가부정부패의 원천봉쇄,정경유착(政經癒着)의 근원적 단절을 표방하고 시행된 금융실명제의 정착 자체를 흔들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5,6共에서의 잇따른 도입실패 경험이나,이번에도 밀실(密室)논의를 통해 긴급명령이란 형태로 발표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말해주듯 금융실명제의 시행이란 정책선택은 대단히 힘든 것이었다.정책결정이 어려웠던 만큼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확고한 정책의지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금융실명제의 법적 기반은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이다.그 명칭에 실명거래와 비밀보장이 병치(倂置)돼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명거래의 도입이 우리 경제의 진정한 분배정의와 도덕성 확립을 위해 중요한 만큼 이의 정착을 위해선 비밀보장이 절대적으로필요하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그래서 실명제 실시에 따른 대통령 특별담 화에서도 「철저한 비밀보장을 위한 절차요건을 최대한 강화할 것」임이 강조됐으며 긴급명령 제4조 금융거래 비밀보장의 예외적용도 매우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이다.그 동안의 관행으로 미뤄 이런 제한속에서 사정당국이 겪을 「불편함」, 예전처럼 쉽게 들춰보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그러나 정부는 철저한 비밀보장을 약속했다.그러면 그렇게 해야 한다.시행 1년 남짓만에 사정활동 좀 편히 하자고 건드릴 문제가 아니다.다른 것도 아니고 대통령 스스로 「개혁중의 개혁이요,우리시대 개혁의 중추이자 핵심」이라고 말한 금융실명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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