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군 안두렵다-남정호특파원 쿠웨이트서 2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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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쿠웨이트-이라크 국경을 사이에 두고 미군의 진주와 이라크군의철수가 동시에 이뤄졌던 12일 낮(현지시간).
비상경계령이 내려져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안내원과 함께 국경지대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는 수도 쿠웨이트시티에서 북동쪽으로 1백50㎞ 떨어진 알무타지역.
이라크로 가는 유일한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이 지역은 전장 2백7㎞ 국경중 어느 곳보다 양쪽의 군사력이 집중된 전략요충지다. 고속도로를 타고 쿠웨이트시티를 벗어난지 20분 남짓,창가의풍경이 갑자기 삭막한 사막으로 변했다.
문명을 등진 유목민 비둔족의 흰 텐트와 무심히 노니는 양떼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국경으로 다가갈수록 도로변에 널브러진 지난 91년 걸프戰의 상흔이 점점 뚜렷하게 나타난다.
시커먼 폐타이어,벌겋게 녹슨 자동차,폭격으로 폭삭 무너진 휴게소,그리고 불타 버린 탱크의 잔해 등등.
고속도로에는 일반차량 이라고는 아예 없고 군수품과 무기를 실은 군용수송 차량만이 드문드문 곁을 스쳐 간다.
국경지역까지 2개의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으나 뜻밖에 아무도 통행증을 요구하지도 제지하지도 않았다.위험지역에 접근하려는 사람이 없어 굳이 검문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인 듯했다.
국경을 20㎞가량 남겨 두고 드디어 전쟁의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쿠웨이트군의 M-84탱크들이 포신을 북쪽으로 겨눈 채1백m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그중 몇몇 탱크는 포신만을 겨우 드러낸 채 구덩이 속에 엎드려 있었다.
방어진지인 듯한 참호가 도로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그저 무거운 침묵뿐.
탱크가 나타나고도 10분쯤 더 달리자 드디어 민간인으로서 갈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도달했다.
「주의.쿠웨이트-이라크 국경 3㎞ 지점.민간인 출입금지」라는거대한 간판과 함께 3번째 검문소가 나타났다.
갈색 군복차림의 국경수비대 2명이『통행증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느냐』고 의심 어린 눈초리로 물었다.
기자임을 밝히자 곧 태도를 누그러 뜨리기는 하면서도『더 이상은 절대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남쪽 후방으로는 쿠웨이트군이 주둔해 있고 북쪽에서는 미군이 작전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군이 전혀 두렵지 않다.그들은 후세인의 실정(失政)으로 사기가 떨어질대로 떨어져 전쟁이 터지는 즉시 백기를들고 쿠웨이트로 걸어 들어올 것』이라고 한 병사는 자신했다.
물론 그런 자신감 뒤에는 미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예비군까지 합쳐 봐야 불과 2만명에 불과한 쿠웨이트군으로서는30만명의 이라크 대군을 상대하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리케이드 너머로는 감시탑과 유엔이 설정한 비무장지대가 손에잡힐듯 가까웠다.
그러나 그곳 역시 숨막히는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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