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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韓·中央亞 포럼 개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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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08면

15일 제1차 한-중앙아시아 협력포럼에 참가한 우즈베키스탄의 안바르 살리바예프 외교차관(오른쪽)과 비탈리 펜 주한 대사가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바람직한 협력 방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펜 대사는 고려인 출신으로 한국 성(姓)은 편씨다. [김수정 기자]

투자설명회를 방불케 하는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중앙아시아 5개국 가운데 우리와 가장 먼저 외교관계를 체결한 우즈베키스탄의 안바르 살리바예프 외교 차관, 비탈리 펜 주한 대사를 만났다. 펜 대사는 “한국 부임 이후 가장 뜻깊은 행사인 것 같다”고 했다. 고려인 동포로 소련 시절 88서울올림픽 선수단 부단장(복싱)을 지낸 그는 주한외교단장까지 맡고 있다. 서울 생활 8년째다.

"자원 개발 넘어 첨단기술 파트너로"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포럼 행사 모습. [김수정 기자]

살리바예프 차관은 “한국이 한국전쟁 이후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한 것처럼 우리도 소련 붕괴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제 발전하려 하고 있다”면서 “한국 경제발전 과정에서의 과오·경험이 중앙아시아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의 유전ㆍ천연가스 개발, 경제통상 분야 협력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앙아의 롤 모델

살리바예프 차관의 언급처럼 한국 정부는 이번 포럼의 핵심 의제를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경제발전 경험 공유’로 정했다. 우리는 에너지 확보 등에 관심이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끝없는 침탈로 분할과 통합을 반복해온 이들 국가의 자존심을 감안했다. 5개국 자원보유량의 편차가 크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이날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축사에서 “한국이 중앙아시아와 나눌 수 있는 분야 중 가장 소중한 것은 국가개발 분야”라며 “한국은 전환기적 상황인 중앙아시아가 단기에 고도성장을 이루는 데 최적의 개발협력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김지홍 교수는 이날 1962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87달러에서 2006년 1만8392달러의 세계 13위 경제대국에 올라선 한국의 발전 역사와 중앙아시아와의 경험공유 프로그램들을 소개했다. 소련 시절 러시아ㆍ우크라이나와 함께 3대 빅3 경제권을 형성하며 중앙아시아의 맹주 노릇을 해온 우크라이나는 현재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92달러에 불과하지만 지난 4년간 7%대의 성장률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최빈국이었던 카자흐스탄은 독립 후 경제 개방정책을 과감히 추진, 현재 1인당 GDP 5083달러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외교·에너지 요충지

중앙아시아 지역, 특히 카스피해 인근은 그야말로 자원의 보고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3.4%, 천연가스 매장량의 4.4%가 이 지역에 확보돼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금 매장량은 세계 5위이고 우라늄 역시 10위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카자흐스탄은 396억 배럴(세계 8위)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 한국이 소비하는 연간 우라늄 수요량(3600t)의 4분의 1을 카자흐스탄에서 공급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니야조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폐쇄ㆍ고립정책을 취해온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우 천연가스가 전 세계 매장량의 10%나 되는 등 자원부국이지만 아직 세계 거대기업이 하나도 진출하지 않은 지역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중앙아시아는 신흥시장 브릭스(BRICs) 국가인 중국ㆍ러시아ㆍ인도 3개국과 지리적 교차점에 있다. 조중표 외교 차관은 “브릭스와 동반 성장이 가능한 잠재 신흥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 중앙 아시아는 9ㆍ11테러 이후 전략적 가치가 증대하면서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강대국들의 접근 속도와 강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유럽 간 내륙통로 요충지이자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결통로이기도 하다.

“한국은 강대국처럼 안 굴어”

중국과 러시아는 정상들이 참가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해, 러시아는 유라시아경제공동체(URASEC) 등을 통해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 역시 지난 2004년부터 중앙아 5개국 외무장관 회담을, 유럽연합(EU) 역시 올해부터 5개국과 외교장관 회담(2004년부터 지역대화 개최)을 가동했다. 중국의 중앙아시아와의 교역량은 92년 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24억 달러로 급증했다.

그동안 북핵문제 중심의 강대국 외교에 치중했던 한국은 손을 뒤늦게 내밀고 있는 셈이다. 늦었지만 기대를 할 만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나 일본과의 협력과 다른 한국만이 갖는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살리바예프 차관은 “중국·일본과의 협력을 비교할 때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정치적인 문제가 배제돼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이나 유럽처럼 정부의 투명성, 부패, 인권문제 등을 걸고 넘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둘라트 바키셰프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도 “최근 중앙아시아에서 거대게임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며 “한국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동등하고 호혜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문하영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도 “강대국의 각축장이 돼버린 중앙아시아에서 미들 파워인 한국은 협력을 많이 해도 문제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고 거들었다.

32만 고려인이 가교 역할

펜 대사는 “한국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지원하는 정책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고려인들의 역량은 대단하고, 한국과 우즈벡, 중앙아시아 발전에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이 자국 내 소수민족 문제를 자극해 불안을 유발시킨다고 인식하는 중국과는 다른 자세다.

이는 고려인들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뒤 집단농장 등에서 특유의 성실성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우즈벡에 20만 명, 카자흐스탄에 10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살리바예프 차관은 “20만 고려인이 우즈벡에서 큰 공적을 쌓아왔고 펜 대사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간 분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한국 가전제품 등을 통한 한류 붐도 상당한 편이다.

“서울에 문화원 개설을”

이날 포럼 참가자들은 단순한 자원개발을 넘어서 정보기술(IT), 수력발전소 건설, 국립관광지대 협력투자(투르크메니스탄)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협력을 요청했다.
정부 당국자는 “중앙아 국가들은 해외 자본이 지하자원만 흡입해 나가는 것을 경계한다”고 말했다. 소련에서 독립한 직후 외국 자본 유치를 하다 대부분의 지분을 거대 석유회사에 내주는 쓰라린 경험 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IT나 건설·교통·물류 분야와 중앙아시아의 자원 에너지 분야의 협력증진을 해나가되 국가별로 ‘맞춤형 진출 전략’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최근 정부는 우즈벡ㆍ카자흐 대사관 개관 이후 16년 만에 주 투르크메니스탄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키르기스스탄에도 1인 공관을 설치하고, 주 타지키스탄에도 1인 공관 신설을 검토 중이다. 펜 대사는 “다른 지역의 문화원이 서울에 있는 것처럼 한국 정부가 중앙아시아 문화원을 서울에 개설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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