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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일곱가지 이야기 ⑤ 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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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세계적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일곱가지 덕목에 대한 이야기로 매주 토요일 중앙일보 독자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주 ‘지혜’에 이어 오늘은 다섯번째로 ‘정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이 정의인가=정의를 뜻하는 영어단어 ‘justice’는 정의와 평등을 의미하는 라틴어 ‘justitias’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주는 행위, 또는 평등’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5장 38절이 가르치는 정의는 조금 다릅니다.

“너희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이른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한 ‘마태복음’ 21장 12절은 이러한 사건을 전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는 사람을 다 내쫓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의 의자를 엎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반케이 선사의 일화=임제종 승려 반케이 선사가 문하생을 가르칠 때의 일입니다. 문하생 중 하나가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다른 문하생들이 그를 쫓아내자고 했으나, 반케이 선사는 그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 그 문하생은 또 도둑질을 했습니다. 화가 난 문하생들은 반드시 그를 처벌해야 한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러자 반케이 선사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모두 현명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있으니 어디서든 너희가 내키는 곳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는 이 불쌍한 자를 가르칠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이 자를 계속 가르칠 작정이다.”
이 말을 들은 도둑은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어느 사형수의 편지=“사형수의 감방은 권력과 처벌과 폭력의 정치가 콘크리트와 쇠를 통해 행해지는 곳입니다. 죄수가 쇠와 콘크리트 그 자체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할지라도 쇠는 결국 구부러지지만, 심장은 아무리 콘크리트처럼 굳어져도 박동은 멈추지 않습니다.”
 2006년 8월 24일 텍사스에서 처형된 저스틴 풀러라는 사형수가 남긴 말입니다.

◆정의의 서글픈 얼굴=15세기에 이단자의 심판을 맡은 신부들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큰 광장에 주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설교를 끝낸 뒤, 무작위로 예닐곱 명을 지명하고 그들 이웃의 동향에 대해 심문했습니다. 불려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이단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다른 누군가를 고발했다고 합니다. 정치학 교수인 파울로 세르조 피네이로는 말합니다.

 “범죄 수사의 방편이자 증거 확보의 수단으로 고문을 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수세기 동안 고문은 진실을 캐내기 위한 수단으로 자행되어 왔다.”

◆페르시아 왕과 스승의 일화=페르시아의 왕 코스로스 1세는 어렸을 때, 한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학생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스승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에게 혹독한 벌을 내렸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코스로스는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좌에 오르자마자 먼저 옛 스승을 불러 스승이 내렸던 불공정한 처벌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왕의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릴 적 폐하의 영리함을 보고, 저는 일찌감치 폐하께서 왕위에 오르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불의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깊이 각인되어 남는지 보여드린 것이지요. 부디 폐하는 합당한 이유 없이 그 누구도 벌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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