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내가 죄인" 이라는 김포외고 설립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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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입학시험 문제 유출 사건에 휘말린 경기도 김포외고의 설립자 전병두 이사장이 그제 “학교 관리를 잘못한 내가 죄인”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릇이 안 되는 사람이 학원을 세워 말썽만 일으키고 있다”는 말도 했다.

<본지 11월 15일자 10면>
 전 이사장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태어나 고교를 중퇴하고 서울 청계천에서 38년간 공구상을 운영해 온 사람이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답게 아직도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모나미 153볼펜을 애용한다. 38년간 휴가는 신혼여행 단 이틀뿐이었다. 그가 지난해 사재 210억원을 털어 ‘서민과 중산층 자녀들이 판사나 검사·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세운 김포외고가 지금 입시부정에 휩싸였다. 잘못은 학교를 맡아 운영한 교장 등 교육전문가에게 있는데 설립자가 대신 “내가 죄인”이라고 사죄하고 나섰으니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김포외고는 입시 비리 의혹을 처음 폭로한 여중생을 적반하장 격으로 경찰에 고소까지 했었다.

 전국의 많은 사립학교가 전 이사장 같은 독지가의 숭고한 뜻에 힘입어 태어났다. 입시 문제 유출이라는 최악의 사태 와중에 전씨의 인생역정과 학교설립 동기가 새삼 부각된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과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전씨뿐이겠는가. 신문 지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익명의 독지가,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쾌척하는 김밥할머니도 있다. 그분들의 선의를 최소한 배신하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 김포외고 교사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설립자의 건학정신을 되새겨보기 바란다.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