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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55) 부산 연제 한나라당 김희정씨

중앙일보

입력

“다른 후보들보다 잘나서 뽑힌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경륜이랄까 커리어 면에선 오히려 턱없이 뒤지는 걸요. 그보다는 ‘2030세대’이고 ‘여성’이란 점이 이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겠죠. ”

지난 달 30일 한나라당 공천 신청자 면접에서 현역인 권태망 의원을 누르고 단수우세 후보로 확정된 이 당의 부대변인 김희정(33)씨는 ‘30대 초반의 여성 정치 신인이 부산에서 공천을 받은 이변’에 자기도 깜짝 놀랐다고 털어 놓았다. 지난 5일 고(故) 안상영 부산시장의 빈소를 지키다 급히 상경했다는 이 파란의 주인공은, 같은 30대 여성인 기자가 그 의미를 부각하자 “젊은 여성 후보란 상징성이 크게 작용한 것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은 얼마나 깨끗하고 도덕적인가를 정치인의 잣대로 삼는 거 같습니다. 정치 신인의 ‘신선함’이 먹히고, ‘경륜’이란 기성 정치인의 장점이 ‘부패’ 이미지와 직결되는, 특이한 시대죠.”

부산 연제구에서 등원을 노리는 그에겐 화려한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최연소 여성 공천 신청자’, ‘한국 정당사상 최초로 지역구에서 출사표를 던진 공채 출신 여성 당직자’. 정작 그는 중·고등학교(이사벨여중·대명여고) 시절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면서 정치인의 자질과 소양을 가꿨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현실 정치를 꿈꿨다’는 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공채 4기로 신한국당에 발을 들여 놓았다.

기획조정국 공천심사특위 부장, 대선기획단 전략기획팀 부장, 사이버팀 사이버기획부장 등을 거치면서 정치 실무경험을 쌓은 그는 지금 부대변인과 차세대여성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바쁜 당직자 생활 틈틈이 공부해 모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도 받았다. 인터넷에 상대적으로 약한 한나라당에서 사이버 홍보에 주력해 온 그는 몇 달 전 최병렬 대표의 인터넷 토론회 ‘병렬아 놀아줘’를 기획, 접속자수 10만이란 기록을 세우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그는 공천신청 마감을 앞두고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등을 떠민 건 당직자로서 현실 정치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이었다.

“당에서 밑바닥 생활부터 경험한 저 같은 당직자 출신들이 당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낙하산으로 들어와 할 말 다하는 사람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죠. 한나라당이라고 개혁을 주저하거나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지난 대선 후 우리 당 내부에도 개혁 바람이 불고 있어요. 당 개혁은 누구보다도 당을 아끼는 사람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그는 당을 개혁하는 데는 당 안팎에서 벽을 깨는 ‘망치’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 내부의 사람들이 안에서부터 벽을 깨고, 당 밖의 새 인물들이 벽을 깨고 들어올 때 당 개혁이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

그는 또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려면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며 “한나라당 공천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배려가 잘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고 아쉬워했다.

“당초 지역구의 30%,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공천심사 과정에서 이런 여성 프리미엄이 반영되지 않고 있어요. ‘여성 할당’이란 제도가 어느 정도 위헌의 요소가 있긴 하죠. 하지만 여성의 본선 경쟁력을 따지는 데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엔 여성이 정치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었어요.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공간이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구요. 신진 정치 세력의 하나로서 여성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해야 합니다.”

▶김희정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자칭 P세대의 대표주자다. P세대는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잠재력(Portential Power)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세대라고 했다. 그런 P세대의 감성과 정서, 문화를 이해하는 건 P세대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30세대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어 내야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며, “이들 2030의 요구를 당에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여성이 당당히 자리잡으려면 여성복지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육이야말로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입니다. 아이 맡길 데가 없어 주부들이 취업을 포기하고, 직장여성들은 출산을 꺼리고 있어요. 정부가 출산장려금 20만~30만원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겁니다. 출산률이 낮을수록 고령화사회로의 진행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에 따르는 문제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예요. 보육은 여성의 사회진출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장밋빛 미래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미혼인 그는 국회의원이 되면 영유아 보육시설 확대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보육 문제’ 때문에 결혼을 늦추고 있는 건 아니냐고 애꿎은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로 시작한 그는 “실은 언론용 멘트”라며 “운명의 상대를 아직 못 만났다” 면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상형은 ‘이해심 많은 따뜻하고 자상한 남자’!

선거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거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부모님이 조금 보태 주시기로 했고, 그동안 모아 놓은 적금도 털어야죠. 사실 선거비용이 저로선 버거워요. 사무실 운영비에, 기본적인 홍보 비용도 만만치 않죠. 그런데 쓸 돈이 없으니, 돈 안 쓰는 선거야말로 진짜 자신 있어요.”

‘한 집에서 30년째 살고 있다’는 그는 지역구인 부산 연제구의 가장 큰 현안으로 ‘교통문제’ 를 들었다. “관공서 밀집지역인 데다 대규모 아파트들이 들어서 문제가 심각하다”며 “쾌적한 공원을 조성하고, 도로를 넓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서두에 강점이라고 밝힌 ‘젊은 여성’이란 점이 아무래도 걸린 걸까, 그는 “지역주민들이 딸처럼, 조카처럼 느끼는 그런 정치인이 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시집도 안 간 젊은 애가 뭘 안다고 정치에 뛰어드느냐는 얘길 들으면 서글프고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 ‘딸 같은 제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심부름 잘할게요’ 하고 손을 꼭 잡으면 대부분 좋아하세요. 요즘은 오히려 주민들이 제 등을 두드려 주고, 자원봉사도 해 주시죠. 그런 분들에게 정말 ‘잘 키운 여성 정치인 하나’가 되어 보답하고 싶습니다. ”

주 진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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