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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 일곱번의 “원더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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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고개(황제의 길)에서 본 거제 앞바다.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황제가 걸어간 길을 수퍼마켓 주인도 걸을 수 있고, 마라톤 선수를 꿈꾸는 코흘리개 꼬마도 달릴 수 있다. 길만 그러한가? 아니다. 파도 소리도, 꽃도, 자잘한 몽돌도 황제의 소유는 아니다. 장삼이사(張三李四), 우리 모두의 것이다.

 거제도 ‘황제의 길’로 불리는 망치고개 정상에 선다. 발아래 내도와 외도를 비롯해 오종종한 섬들이 만추(晩秋)의 햇살 아래 누워 있다. 여자의 섬 내도는 뭍 쪽에 가깝고, 남자의 섬 외도는 바다 쪽으로 밀려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름지기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야 하는 법, 외도가 풍랑으로부터 내도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제도 사람들은 외도가 내도 여인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가들다가 여인이 소리치자 바다에 그대로 멈춰 섰다는 설화를 그대로 믿고 있다. 그러니 두 섬은 안과 바깥의 섬이라는 뜻이 아니라 남녀가 내외하는 섬이라는 뜻이다.

 ‘황제의 길’에서 내도와 외도의 의미를 곱씹는 사이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떠오른다. 1968년 한국을 방문했던 셀라시에 황제는 비공식 일정으로 거제도를 찾았다 망치고개에 올랐다. 그는 고갯마루에서 내도·외도가 보이는 순간 가슴이 멎는 황홀경에 “원더풀”을 외쳤다. 고갯길을 내려와서도 그는 또 “원더풀”을 외쳤다. 짙푸른 바다에 고깃배 몇 척 떠다니고, 조개만 한 초가들 몇 채 바닷바람에 맞서고 있는 모습이 그의 동심을 자극했으리라. “원더풀”, 그는 “원더풀”을 일곱 번이나 외친 뒤 고개 아래 망치삼거리에서 일정을 접고 돌아갔다.

 

(2)학동 몽돌해변.(3)홍포 일몰과 구름.

셀라시에 황제의 감탄을 자아낸 거제의 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바다를 따라 계속 이어진다. 해안도로 길이가 무려 398㎞. 면적으로 치면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 섬이지만 해안도로는 제주도보다 길다. 오죽하면 거제도 크기를 자세히 알지 못한 관광버스 기사들이 ‘기름값 많이 든다’며 인상을 찌푸린다는 얘기가 나올까.

 셀라시에 황제가 발길을 돌린 망치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든다. ‘황제가 가지 않은 길’, 그 길 옆의 학동 흑진주몽돌해변에 서서 귀를 연다. 수백만 년 파도에 부딪혀 오는 동안 귀퉁이가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 위로 파도가 다가왔다가 밀려간다. 여기서 파도가 밀려갈 때의 소리가 중요하다. 사그락 사그락, 형용할 수 없는 소리가 몽돌해변 주변에 밀려 퍼진다. 파도가 몽돌 사이를 빠져나가는 소리가 어떤 악기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음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25년 전 기자 초년병 시절 소설가 이무영 선생의 후손을 찾아 거제도를 처음 왔었다. 선생의 아들은 삼성중공업에 근무하고 있었고, 그는 필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점심상을 내왔다(거제도까지 내려와 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때 이무영 선생의 아내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유족은 찾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아들은 쉽게 찾은 셈이었다). 그때, 아이들이 피아노를 쳤다.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오가며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를 만들어 내던 아이들의 흰 손이 떠오른다. 그 소리들, 생각하니 흑진주몽돌해변의 몽돌이 만들어 내는 사그락 소리가 그 피아노 소리와 닮았다. 셀라시에 황제가 이곳까지 왔었다면 다시 "원더풀”을 외쳤을 것을.

 어쨌거나 거제는 한국 중소도시의 성장성을 내포한 아이콘이다.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에는 무려 17만 명이 수용돼 있었는데 지금 거제 인구가 갓 20만 명을 넘는다. 그게 아쉬운 일은 아니다. 10년 전 IMF 사태를 맞았을 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꾸역꾸역 거제도로 몰려들었다. 거제도에 가면 먹고살 길이 있다는 말이 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거제시에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식솔까지 합치면 인구 절반이 넘는다. 작은 도시의 인구는 줄고 있는데 거제시의 인구가 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화관광 해설사 박미자씨가 “거제도에서 축구를 하면 공이 바다에 빠지기 일쑤라는 말은 잊어 달라”는 말의 함의도 여기에 있다. 거제시는 크고 아름답다는 뜻이다.

 황제가 가지 않은 길, 여차저차 가다 보니 여차마을이라던 그 여차마을 끝에 홍포가 있다. 거제시의 비경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남겨 놓은 비포장도로 3㎞를 달리면 나타나는 망산(望山). 그 아래 대병대도, 소병대도, 대매물도, 소매물도가 한눈에 잡히는 곳이거니와 멀리 대한해협으로 이어진 바다의 길이 펼쳐진 곳이다. 황제의 길과 황제가 가지 않은 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일몰 무렵. 붉은 석양 한가운데로 고깃배가 지난다. 눈부심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같은 길을 가더라도 다른 무엇을 보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달리지 않은 길을 가며 생각을 품는 것이다. 그 눈부심에 답하듯 홍포의 일몰 속으로 흑진주몽돌해변의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겹쳐진다. 이 시간 속에 있는 한 우리는 누구나 황제다.임동헌교수는=소설가·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1957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낙농학과를 졸업했다. ‘사진 찍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민통선 사람들』 『기억의 집』 『별』 등의 소설과 『한국의 길, 가슴을 흔들다』『여행의 재발견』 등 인문 교양·여행서, 『디카씨 디카 See』 등 20여 권의 책을 냈다.

임동헌교수는=소설가·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1957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낙농학과를 졸업했다. ‘사진 찍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민통선 사람들』 『기억의 집』 『별』 등의 소설과 『한국의 길, 가슴을 흔들다』『여행의 재발견』 등 인문 교양·여행서, 『디카씨 디카 See』 등 20여 권의 책을 냈다.

■거제도 여행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 나들목에서 14번 국도를 타고 거제시까지 간다. 거제 시내에서 1018번 지방도를 타고 구천댐을 지나면 구천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구조라해수욕장이 있는 망치삼거리까지 5㎞ 구간이 ‘황제의 길’이다. 망치삼거리에서 학동 흑진주몽돌해변∼팔색조 도래지∼거제 해금강∼다포삼거리∼여차 몽돌해변∼홍포마을까지 이어지는 25.5㎞의 해안도로는 황제도 가 보지 못한 절경의 연속.

거제 시내에 위치한 거제도포로수용소공원은 1950년 11월부터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인민군과 중공군 포로 17만 명을 수용했던 곳. 탱크전시관,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 포로생활관 등에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 일부를 재현했다. 해금강 입구에 위치한 해금강테마박물관(055-632-0670)은 ‘그때 그 시절’을 주제로 한 추억의 공간. 서점·사진관·교실·미장원·만화방 등 추억의 공간을 재현하고 당시의 자료 5만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거제는 숙박시설도 넉넉한 편. 거제삼성호텔(055-631-2114)은 특1급 호텔로 스위트룸 등 객실 80개와 피트니스센터·실내수영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급호텔은 주말 예약이 힘든 게 보통이지만 거제는 반대다. 조선소 비즈니스 손님들이 대거 빠져 나가기 때문에 주말 숙박이 오히려 쉽다. 망치삼거리와 거제 해금강, 학동 흑진주몽돌해변 등 바닷가 주변엔 펜션들이 많다. 거제시청 관광과 055-639-3198.

■먹거리 거제시청 옆에 위치한 백만석(055-637-6660)은 멍게비빔밥 원조식당. 제철인 4∼5월에 잡아 일주일 정도 숙성했다 얼린 멍게(우렁쉥이)에 김 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다. 멍게 특유의 향긋하면서도 쌉쌀한 맛이 일품이다. 도다리 쑥국과 함께 거제시가 선정한 10대 향토음식 중 하나.

임동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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