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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의아시안>외국어통역 자원봉사 가지타니 가오루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평양출생→일본관동군 첩보원→소련군 포로→중국인민해방군 장교→퇴역→귀향(일본)….아시안게임 자원봉사자(러시아어.중국어통역)가지타니 가오루(梶谷馨.73).
그는 나이도 나이려니와 극적인 인생유전 때문에 이번 대회 슬로건(아시아의 화합)에 가장 걸맞은 인물중 하나로 꼽힌다.그가태어난 곳은 1921년3월 평양.일본경찰이던 아버지가 평양에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세살때 아버지의 근무 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간 그는 43년 다롄(大連)상업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만주주둔 일본관동군에 입대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라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지.행(幸)인지 불행인지 군대에서 1년동안 러시아어를 배워 첩보팀에 배속됐지.』 그는 만주(당시 일본치하의 만주국)와 소련의 국경지대를 무대로 첩보활동을 벌였다.그러나 6개월여만인 45년8월 일본이 연합군에 무릎을 꿇으면서 그도 아무르강 유역에서 소련군의포로가 됐다.
『내가 첩보원이란 걸 게페우(소련의 첩보기관.KGB전신)가 알았으면 당장 총살했을 거야.그런데 첩보활동을 할 때는 다시로(田代)라는 가명을 썼기 때문에 모르고 넘어간거지.』 그뿐만이아니었다.포로들중 러시아어를 아는 사람이 드물어 그는 통역으로차출됐다.영하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속에서 헐벗고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매는 몇대 덜 맞았을 것이라는게 그의 회고.이듬해 소련군은 일본인 포로(약3만명)는 시베리아로 보내고 중국인포로(약5천명)는 중국인민해방군에 인계했다.시베리아로 끌려가면죽는다는 정보를 얻어들은 그는 통역 덕분에 친해진 소련군장교에게 통사정,중국인 포로에 낄 수 있었다.
그는 50년 역시 인민해방군 간호사병으로 있던 일본여자와 결혼,1남1녀를 얻었으나「더이상 쓸모가 없다」는 군지휘부의 판단에 따라 53년 반강제로 전역했다.8년동안 3개국 군대를 전전한 그는 상하이(上海)를 거쳐 아버지의 고향 이와 쿠니(岩國.
히로시마북부 30㎞)로 돌아와 지금껏 간판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지난 25일부터 이와쿠니에서 기차로 출퇴근하면서 매일 7시간씩 통역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그는『어려서 평양을 떠나는 바람에 한국어를 거의 몰라 아쉽다』며『나 같은 사람이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鄭泰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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