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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없어질 빙하·만년설 봐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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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 알래스카의 보포트 해안에서 지반을 단단하게 받쳐 주던 영구동토층이 지구 온난화로 녹으면서 바닷가 땅이 파도와 바람에 쉽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보포트·시시마레프(알래스카) AP=연합뉴스]

알래스카 북서쪽 시시마레프의 전경. 이 마을에선 올여름 얇아진 얼음층이 꺼지면서 젊은 사냥꾼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 등 주민들의 삶이 위기에 처했다. [보포트·시시마레프(알래스카) AP=연합뉴스]

태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빙하와 만년설로 뒤덮인 매킨리산이 손짓했던 알래스카. 이곳이 요즘은 지구 온난화로 급속히 녹아내리는 툰드라(영구동토층)와 빙하를 살펴보는 '환경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가 14일 보도했다.

알래스카의 경우 지구촌 다른 지역보다 다섯 배나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후 변화를 직접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려는 과학자.정치가 등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최근 미국 상원의 메리 랜드루(루이지애나.민주당) 의원이 온난화의 폐해를 살펴보기 위한 현장 청문회를 개최했는가 하면 미국 내 48개 주 시장들이 단체 방문해 앵커리지 시장인 마크 비기치가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특히 빙하 붕괴 현상이 현저하게 목격되는 '엑시트 빙하'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존 매케인(공화당) 상원의원 등 유명 인사들이 숱하게 다녀갔다.

복음전도자로 유명한 해리 잭슨 목사는 올 8월 알래스카 북서쪽 변방의 에스키모 마을 시시마레프를 찾았다가 얼음층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집이 무너진 현장을 보고 난 뒤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믿지 않아 회의론자로 불렸던 내가 신봉자로 '개종'했다"고 말했다.

관광객 중엔 알래스카 특유의 풍광이 사라지기 전에 봐 두려고 서둘러 찾은 이가 많다. 그러나 이미 예전 모습을 잃은 곳이 상당수다. 추가치 주립공원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방문객 센터에 앉아 창밖으로 손에 잡힐 듯한 푸른 빛 빙하를 감상할 수 있었지만, 이젠 울창한 삼림이 더 눈에 들어온다.

온난화는 알래스카 주민이 지켜온 전통적 생활방식에도 변화를 몰고 왔다. 북극해를 덮은 두꺼운 얼음층을 오가며 야생 동물을 사냥해 왔던 시시마레프 마을의 젊은이 한 명이 올 여름 얇아진 얼음층이 깨지는 바람에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이곳을 비롯한 여러 마을의 주민들이 더욱 추운 내륙 깊숙한 곳으로 이주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비용이 1억~4억 달러(약 914억~3654억원)나 되는 데다 행정 문제도 겹쳐 지지부진한 상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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