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FTA 농민 추가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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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처리를 미룬 지 하루 만에 정부가 추가적인 농민 지원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익을 외면한 국회의 파행에 정부가 장단을 맞추는 형국이다. 일단 떼를 쓰고 버티면 한 가지라도 더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관행이 재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림부 김주수 차관은 10일 "국회 측에서 구체적인 (추가 지원) 방안을 제시해오면 관계부처와 의논한 뒤 농민단체와도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정경제부의 고위 관계자도 "비준안을 통과시키려면 (추가 지원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해 사실상 추가 지원책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음을 시사했다.

이날 농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국회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허상만 농림부 장관을 만나 농민에 대한 추가 지원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는 농민들이 농협에서 개인적으로 빌려 쓴 돈(상호금융.약 20조원)의 상환금리 7.9%를 3%로 낮춰 부담을 덜어달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 1조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다 농민단체들은 과수 농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이 적은 축산.원예농가에 대한 지원도 요구하고 있다.

농촌 국회의원들은 FTA 비준안을 볼모로 삼아 지역구에 생색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이날 "농촌 출신 의원들과 정부 측의 합의가 없는 한 16대 국회 회기 중 FTA 비준안을 다시 상정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미 농가 피해예상액의 3배에 이르는 1조5천억원을 7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다 추가 지원책까지 들어주면 앞으로 개방 논의 때마다 더 많은 요구에 시달릴 게 뻔하다. 특히 상호금융은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사적인 대출이다. '버티면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정부가 앞장서 용인하는 셈이다. 꼬박꼬박 돈을 갚아 온 농민이나 서민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홍익대 김종석(경제학)교수는 "소수에 의해 국정이 발목잡히는 상황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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