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은 9월 11일 정부 과천청사 브리핑 룸에서 연금법 개정안을 설명하며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민간에 완전히 맡기겠다”고 말했다. 당시 개정안은 복지부 산하의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기구로 완전 독립시키는 것이 골자였다.
불과 두 달 후인 14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법제처에 심사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민간기구화해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던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뒤로 간 정부 정책=기금 운용을 민간에 완전히 맡기면 국민이 불안해한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개정안을 바꾼 이유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둬야 국민이 믿고 보험료를 낼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올해 국민연금공단의 신뢰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47%)는 ‘국민연금을 못 믿겠다’고 답했다. 이 중 3분의 1은 ‘정부의 잘못된 기금 운용’을 이유로 꼽았다. 정부가 ‘정치 등 다른 목적에 연금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원칙 없는 기금 관리와 낮은 수익률을 꼽은 응답자도 많았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최근 논의는 부처 간 권한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금운용공사에 대한 견제·감독 기능 강화 같은 실질적인 문제는 오히려 뒷전”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 형태와 관련해 재정경제부와 복지부는 완전 독립을, 기획예산처와 총리실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고집했다.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는 안을 만들면서 무리수도 뒤따랐다. 대통령 직속 기구이면서 위원들이 공무원 신분이 아닌 형태는 전례가 없는 것이다.
◆독립성 더 높여야=국민연금 기금은 이미 공무원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기금 규모는 정부 예산과 맞먹는 2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30년에는 1814조원으로 불어난다. 국내총생산(GDP)의 54%다. 정부는 이미 신뢰를 잃을 만한 일들을 해 왔다. 1994~2000년 국민연금기금에서 39조원을 빼서 공적 자금으로 사용했다. 이자를 쳐서 갚기는 했으나 그 돈으로 채권 투자를 했으면 2조원가량의 수익이 더 났을 것이란 주장(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도 있다. 2004~2006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6.4%다. 같은 기간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은 13%,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는 19.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일본·싱가포르 등은 기금 운용을 정부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최근 연금 개혁을 한 캐나다·뉴질랜드·아일랜드 등은 모두 독립 운용 체계로 전환했다.
김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