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손상으로 꿈 접은 소년 ‘트럼펫의 카루소’ 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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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러시아에서 태어난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30·사진)는 여섯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날 자동차 사고가 아홉살짜리 재주꾼을 가로막았다. 척추 손상으로 의자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다. 연습이 생명인 피아니스트의 꿈은 여기서 끝났다.

그때 서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며 아버지가 가져온 것이 트럼펫이다. 트럼펫을 잡고 1년 만에 그는 러시아의 교향악단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30대에 접어든 그는 지금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트럼펫 연주자로 꼽힌다. 특히 빠른 템포로 유명한 ‘왕벌의 비행’을 현란하게 불어제끼는 그의 동영상은 ‘유튜브’사이트에서도 화제다.

트럼펫 연주자는 대부분 오케스트라나 금관 밴드에 들어가 무대에 오르는 관행도 깼다. 피아노 한 대와 함께 또는 오케스트라의 단독 협연자로 입지를 굳혔다. 트럼펫 독주 곡이 많지 않자 기존 곡들을 직접 편곡했다. 멘델스존·슈베르트의 바이올린·비올라 협주곡 등이 그의 연주 곡목에 들어있다.

 미국의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그에게 트럼펫은 손과 발의 일부”라고 평했다. “일반인들이 숨을 쉬는 동안 그는 트럼펫을 분다”고 비유한 평론도 있다. 그는 숨을 내쉬면서 동시에 조금씩 들이마쉬는 방법을 통해 끊기지 않는 음을 표현해낼 수 있게 됐다. 이 ‘순환 호흡법’은 일부 연주자들만 할 수 있는 기술이다.

프랑스 파리에 살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나카리아코프는 1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프랑스 리퍼블릭 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부드럽고 우아한 바흐의 곡에서는 ‘트럼펫의 카루소’라는 별명을, 놀라운 기교를 선보일 ‘호라 스타카토’에서는 ‘트럼펫의 파가니니’라는 나카리아코프의 별명을 각각 확인할 수 있을 듯 하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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