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立稻先買가 웬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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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16 이후의 첫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두번째 지방의회 선거가 내년 6월27일로 예정돼 있다.앞으로 꼭 아홉달 후다.그러나 이미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워밍업이 한창이다.
지방의회 선거도 선거지만 실로 34년만에 실시되는 자치단체장선거에 특히 국민의 관심이 크다.그동안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정부 입장에서는 지방행정권의 상당부분을 야당에 내줘야 할 형편이다.그중에서도 전인구의 4분의 1,산업체의 4할 가까이가 몰려있는 수도(首都)서울 시장을 어느 정당이 장악하느냐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후계(後繼)구도가 불명확한 우리 정치의 앞날과 관련해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몇개 시.도(市道)의 자치단체장 선거에는 여야가 모두 당력(黨力)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이 경우 과연 여야가 새로 제정된「공직선거및 선거부정 방지법」에 따라 관권(官權).금권(金權)의 동원을 비롯한 선거 부정 을 철저하게 배제할 수 있을는지가 문제다.
이미 정당 주변에서는 자치단체장및 의원의 공천권 행사를 둘러싸고 별의별 풍문(風聞)이 나돌고 있다.심지어는 공천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입도선매(立稻先賣)의 기미가 있다는 불만까지 강하게 제기되는 형편이다.
정치 지망생이 선거의 관문(關門)인 정당 공천을 받기 위해 공천에 영향을 미칠 실력자들에게 줄을 대는 것은 항용(恒用)있던 일이다.자신의 능력을 보이고,충성을 맹세하며,정치자금을 대는 것등이 그런 방법이었다.공천권이 집중돼있는 집 권당과 비교적 분산된 야당간에는 그 행태에 차이가 있긴 하나 실력자에게 능력.노력(勞力).시간.돈을 들이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이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공천을 마치 돈으로 사고 파는 듯한 행태다.집권당이라고 해서 이 비슷한 일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야당의 경우는 거의 공공연히 정치헌금으로 공천을 사고 파는 일이 자행돼왔다.전국구 공천에서 안전권(安全圈)은 몇몇 당원로(黨元老)를 제외하고는 다액(多額)헌금자로 채워지는게 관례다시피 되었다.더구나 헌금 공천자들은 공식헌금 뿐 아니라 공천을 주선한 실력자에게 별도의 정치자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끄러운 매관매직(賣官賣職)관행은 정치자금 모금에 제약이많은 야당으로선 불가피한 선거자금 조달책으로 설명되곤 했다.그러나 이러한 「불가피론」도 60~80년대와는 달리 92년 총선거때는 국민의 거부감이 매우 컸다.더구나 정당 선거자금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보조하도록 정치자금법이 새로 개정된 마당에 이런설명은 전혀 설득력을 잃고 있다.
4개 지방동시선거가 있을 내년에는 2백32억원의 기본국고 보조금 외에 추가로 6백96억원이 정당에 보조된다.이중 반 가까이가 민자당(民自黨)에,37%이상이 민주당(民主黨)에 돌아간다.충분하지는 않더라도 1,2당에는 꽤 도움이 될만 한 액수다.
그런데도 과거 하던 버릇 때문인지 벌써부터 지방공천과 관련해입도선매의 기미가 보인다는 것은 불쾌를 넘어 분노를 자아낼 일이다.여야는 정치개혁의 기본을「돈 안드는 정치,돈 안드는 선거」로 설정하고 지난 봄「공직선거및 선거부정 방지 법」을 제정했다.이 법은「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취지에서 선거비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행위자 처벌은 물론 당선무효.피선거권 제한등의 강한 징벌을 규정하고 있다.
***솔선 안하면 단속을 그런데 공천을 둘러싸고 전과같이 돈을 주고 받는다면 이 돈 안쓰는 선거의 제도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돈을 처들이고 받은 공천이 아까워서라도 후보자들은 선거에서 돈을 쓰려는 유혹에 더 빠지게 될 것이다.당연히「돈 안쓰는 정치」와 「돈 안쓰는 선거」는「돈 안주고 받는 공천」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하다.
우선 정당 스스로가 당(黨)차원에서는 물론,파벌 보스나 실력자 차원에서 이런 일이 없도록 단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런 정당의 노력이 미흡할 때는 정부가 정치개혁 차원에서 공천 사고 팔기 일소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이 대명천지에 공 천을 돈으로사고 판대서야 말이 되는가.
〈論說主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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