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열린우리당, 파병안 발목 잡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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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이 9일 이라크 추가 파병안의 국회 통과를 연기하겠다고 의원총회에서 결정한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추가파병을 요청한 것이 5개월 전이다. 정부가 파병원칙을 정한 것은 지난해 10월이고,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 12월 17일이다. 도대체 그동안 뭘하고 있다가 본회의 처리 당일에야 정부안이 당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기를 결정하는가.

열린우리당은 처리를 늦추어도 파병 자체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또 한번 크게 손상될 한.미 간 신뢰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니 어느 나라 정당이냐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나 구성 면면들을 볼 때 파병이 내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미리 盧대통령이나 정부와 협의해 자신들의 주장을 정부안에 반영했어야 했다. 정부안이 결정되고 여기에 야당이 동조토록 한 뒤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얄팍한 술수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야당을 함정에 빠뜨린 뒤, 자신들은 반미.자주를 내세워 지지표를 챙기자는 계산을 한 것은 아닌가.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권고적 당론'으로 반대키로 하면서 이날 표결하겠다고 나선 민주당의 모습과도 차이가 있다.

열린우리당 소속 장영달 국방위원장의 처신도 얍삽하기 그지없다. 경찰이 막고 있는 파병반대국민행동 관계자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인 뒤 국회에는 전화로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니 기가 막힌다. 시정의 잡배도 이런 처신은 하지 않는다.

미국과 우리는 동맹관계다. 동맹은 동맹의 몫을 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붙잡아 두고 동맹의 도움 요청은 묵살할 수 있는가. 또 큰 틀에서 우리가 어느 나라와 손을 잡고 가야 국익이 될지 자명한 것 아닌가. 이런 행태를 보며 미국은 한국을 과연 고마워하기나 할까. 이미 파병한 일본 자위대와도 비교될 게 분명하다. 이라크 파병안을 더 끌지 말라. 반대하려면 당당하게 하고 그 책임을 져라.

비겁하게 술수로 국면을 넘기려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