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이불 속 문제'도 때론 심판이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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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아는 분으로부터 들은 얘기 하나. 그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몇 달 전 초등학생이 쓴 것으로 추측되는 전단이 붙었다. “토끼를 찾아주세요. 털 색깔이 눈처럼 하얗고, 눈은 초롱초롱해요. 아주 예쁘고 귀엽게 생겼답니다. 꼭 찾아주세요.”
 그는 ‘객관적 특징을 묘사해야지, 이래서야 어디 찾을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다가, ‘자기 아이를 남에게 묘사하는 엄마들의 모습도 꼭 이렇지 않을까’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오더란다. 애완동물이나 자식만이 아니다. 나와 감정적으로 얽혀 있는 존재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눈은 더 멀기 쉽다. 지구상에서 ‘장미의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이유도 대개 이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배우자가 보는 나는 많이 다를 수 있다. 착각은 평화 공존의 최대 적이다. ‘나는 잘 하고 있는데,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나만 희생한다’는 어두운 피해의식이 가정을 덮치고 그것이 퇴적되기 시작하면, 그 결과는 쓰나미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지난달 열린 부부행복학교(본지 11월 5일자 22면)에 다녀온 패밀리 리포터에게 가기 전과 다녀온 후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 성격이요.” 성격유형검사를 하는 강의시간이었단다. 평소 자신을 ‘말 없고 순종적인 스타일’이라 여겼던 그는 의외의 검사 결과에 놀랐다고 한다. “제가 욱 하는 성격이 있대요.”
 욱 하는 것까진 잘 모르지만, 제3자로서 보기에 그의 성격은 말 없고 순종적인 쪽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는 “남편 성격도 내가 모르던 부분이 있더라”고 말했다. “남편이 술자리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검사를 하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느긋한 성격’으로 나왔어요. 알고 보니 제가 싫어하니까 티를 안 냈을 뿐, 속으로는 술자리에 자주 가고 싶어했더군요.” 결혼 13년 만의 발견이었다.

 주름개선 화장품의 광고문구처럼 ‘이전’과 ‘이후’의 드라마틱한 차이를 느낀 건 다른 부부들도 비슷했다. “남편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알게 됐다. 나부터 바뀌어야겠다” “아내가 아닌, 바로 내가 바뀌어야 한다” “이 나이에 뭘 기대하느냐 싶었던 생각이 ‘지금이라도 나를 바꾸고 서로 잘못된 점을 고치자’로 바뀌었다” 등등. 주목해야 할 것은 나를, 그리고 나와 배우자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자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가끔은 경기장을 떠날 필요도 있고, 심판의 충고에 귀 기울일 필요도 있다. ‘누가 이불 속 문제를 도와주랴’ 수수방관하지 말고 제3자의 힘을 빌려보자. 그리하여 출사표가 아닌 반성문을 쓴 후 전장(戰場)에 나선다면, 그 전쟁은 어느 한쪽이 사망에 이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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