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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서 회고전 연 재일교포 영화감독 최양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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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모국에서 회고전을 연다는 말을 듣고 '어느덧 내가 그런 나이가 됐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긴 하면서도 한편으론 노인이 된 것 같아 괴로웠지요. 그래도 젊은 관객과 함께 대화를 한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온 재일교포 2세 감독 최양일(崔洋一ㆍ55)씨를 지난 7일 서울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만났다. 그는 3~8일 감독 데뷔 20년을 기념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던 회고전에 참석해 관객과 대화를 나눴고, 신작 '피와 뼈'의 촬영 장소를 찾으려고 강원.충청도 일대를 둘러봤다.

고교 시절 영화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그간 대표작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개 달리다' 등을 통해 재일교포의 고단한 삶을 스크린에 옮겨왔다.

"정체성 탐구는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또 영화는 예술인 만큼 사회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는 건 아닙니다. 저 스스로 가장 경계했던 것도 제가 보고 들었던, 즉 그간의 경험을 단순하게 재단에서 화면에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쿄(東京) 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한 그는 인간의 정욕을 직시한 '감각의 제국'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게 연출 수업을 받는 등 10년 이상 현장 경험을 쌓은 뒤 1983년 '10층의 모기'로 데뷔했다. 그럼에도 오시마 감독에게선 "영화적으로 영향 받은 건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음달 말 촬영에 들어갈 차기작 '피와 뼈'는 제주도 출신의 재일 교포가 북한으로 이주하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이 영화에는 '소나티네''하나비'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일본의 인기 배우 겸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으로 캐스팅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기타노 다케시는 오랜 친구이며 데뷔작인 '10층의 모기'에 카메오(깜짝 출연)로 나온 적이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최감독은 일본 내 소수 민족의 애환을 담아온 그의 경력을 보여주듯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도 거론했다.

"한국에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아랍 출신까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머지 않아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다룬 영화가 등장할 겁니다. 제 예감으로는 사랑 얘기부터 나올 것 같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만든다면 러브 스토리는 아니겠지요."

그는 유머 있는 말로 분위기를 띄웠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처럼 영화를 만들어 돈도 많이 벌고 싶지만 만들다 보면 항상 그런 (돈 안되는) 영화가 나오는 까닭이 스스로 궁금해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해답을 찾기 어렵겠죠"라며 웃었다.

그는 자신을 '모험왕'이라고 표현했다. 어려운 여건에서 좌충우돌하며 제작비를 모아온 그의 과거를 빗댄 말이다. "일본에서도 작가영화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돈 안되는 영화에 돈을 대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큰 사기꾼은 아니라도 작은 사기꾼 정도는 될 겁니다." 스스로를 '사기꾼'에 비유한 그의 솔직함과 자신감이 보기 좋았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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