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당찮은 이회창씨 출마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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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 전 총재의 발언이나 태도를 보면 이미 출마 결심을 굳힌 듯하다. 그는 자신의 출마설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은 물론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도 비판을 넘어서서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 후보를 ‘어중간한 지대에서 친김정일 세력의 눈치나 보는 기회주의자’라고 몰아붙인 것은 결별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당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또 당의 공식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면 충고나 지적을 하지 원색적인 비난은 하지 않는다.

이 전 총재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자유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정치적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는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을 한나라당으로 바꾼 당사자며, 두 번이나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섰으며, 지금 한나라당 당원이다. 그가 이 후보나 한나라당의 노선이 그렇게 못마땅했다면 한나라당 경선에 출마해 심판을 받는 게 마땅했다. 선거를 40여 일 남짓 남겨놓은 마당에 이제 와서 탈당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적 처신 아닌가. 이는 법과 원칙을 강조해 왔던 이 전 총재의 모습과는 배치된다.

이 전 총재 측이 주장하는 ‘스페어 후보론’도 가당찮다. 이명박 후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보수 진영도 복수의 후보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 듣기에 따라서는 마치 이 후보의 낙마를 기대하는 것 같다. 남의 불행을 기다리는 이 전 총재의 모습은 그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 번진 데에는 이명박 후보의 잘못도 적지 않다. 경선이 끝난 뒤 이 후보는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나 당의 원로인 이 전 총재를 끌어안는 데 소홀했다. 측근들을 방치한 잘못도 있다. 박 전 대표 측을 겨냥해 “당내에 아직 이 후보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는데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이재오 최고위원)거나 “이 전 총재가 출마하려면 2002년 대선 잔금의 의혹을 풀어야 할 것”(이방호 사무총장)이라는 거친 말은 화합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버리는 자해행위다. 경선에서 석패한 박 전 대표의 아쉬움과 네거티브 선거전에 휘말려 대선에서 두 번 쓴잔을 마신 이 전 총재의 회한을 달래고 위로해야 할 책임은 이 후보에게 있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그런 통합의 리더십도 갖춰야 한다. 이것은 이명박 후보의 몫이다. 개인의 의지에 따라 출마할 수는 있지만 정치 도의상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이는 이 전 총재의 몫이다. 그들이 어떻게 처신하는지 지켜보고 평가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