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700년 강국’ 고구려 내공의 비밀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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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고구려, 전쟁의 나라
서영교 지음,
글항아리,
432쪽, 1만5000원

한 나라의 역사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가 있게 마련이다. 시대적 상황에 맞춰 어떤 걸출한 영웅이 나타나 시대를 제대로 경영하면서 그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고, 그 역사는 주위의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과 숱한 겨룸 속에서 때론 번성하고, 또 어떤 때는 고난을 거쳐 마침내 기력을 다하면 소멸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의 역사는 국가의 ‘생명’이란 측면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여실히 보여준다. 후한말엽 시작돼 수·당을 비롯한 중원의 패국들과 선비·유연·돌궐·거란·말갈 등 아시아대륙의 야성 민족들의 틈바구니에서도 700년을 존속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우리가 민족역사상 고구려에 대한 애틋함이 남다른 점도 아마 이 같은 고구려 역사의 다이내믹한 강인성에 기인하리라.

지금도 상당부분 그렇지만 국제정치상 국가 간의 관계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른다. 이 같은 논리의 기본은 힘을 바탕으로 벌이는 전쟁이다. 전쟁이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구려의 역사를 전쟁이란 프리즘을 통해 들여다본 저자의 안목은 그럴싸하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고구려의 질긴 생명력의 원천을 수렵민족의 특성에서 찾는다. 수렵민족의 기본 삶은 약탈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고구려는 있는 것을 지키는 나라가 아니라, 국경을 열고 무엇을 찾아 다녀야 하는 나라였고, 이것이 영토 확장의 동기였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료의 극심한 빈곤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 심지어 동로마제국의 역사서까지 꼼꼼히 챙겨 통사 방식으로 고구려 역사를 전쟁이란 틀을 통해 복원해내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특히 전쟁전문가답게 각종 병기의 장단점, 성의 효능, 기병과 보병의 역할 등에 대한 지식을 동원해 고대 전장을 영화처럼 그리고 있는데, 고구려군의 주력으로 개마무사(鎧馬武士)를 꼽고 있는 현재의 통설을 부정한다. 여름이면 쪄서 죽을 맛일 테고 겨울이면 옷을 껴입어 기동이 원활치 못하다는 것이다. 책 전체를 일관해 당시 전쟁에서 승리의 요건으로 유목민족의 기병을 얼마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느냐로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협지처럼 재미있고 술술 읽힌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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