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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D-1년] 백악관, 첫 여성 대통령에 문열어 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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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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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2008년 11월 4일 실시된다. 선거일이 1년 남았다. 하지만 열기는 한국 못지 않다. 내년 1월 초부터 민주.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50개 주별 경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선 레이스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현장 르포와 판세 분석을 통해 소개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60) 상원의원이 8명의 경쟁자를 압도하고 있다. CBS방송은 지난달 17일 "자체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의 지지율이 51%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8%포인트 올랐다. 매일 조사를 하고 있는 라스무센 리포트는 지난달 30일 "힐러리가 후보로 선출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77%에 달했다"고 밝혔다.

힐러리 대세론이 확산하는 까닭은 그가 토론회 등을 통해 '준비된 대통령'의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제시한 건강보험 개혁방안은 워싱턴 포스트 등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그는 여성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여성'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여성 유권자만 초청하는 대규모 행사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일각의 거부감을 여성의 지지로 극복한다는 게 그가 세운 전략의 일부다.

그는 흑인층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흑인 유권자 쟁탈전에서 40대 흑인 기수인 버락 오바마(46) 상원의원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있다. 이는 '사실상 흑인 대통령'으로 불렸을 정도로 흑인층에서 인기가 높은 남편의 외조 덕분이다. 힐러리는 의회에서도 막강한 세력을 구축했다. 그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상.하원 의원은 31일 현재 68명이다. 반면 오바마를 지지하는 의원은 27명이고, 당내 지지율 3위인 존 에드워즈(54) 전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의원은 15명이다.

힐러리는 공화당 후보와의 가상 맞대결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상반기엔 공화당 선두 주자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 늘 약세를 보였으나 이젠 6~7%포인트 앞서고 있다. 하지만 힐러리에 대해선 "지나치게 당파적"이라며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50%에 가깝다는 점이 문제다. 민주당에서 "힐러리의 본선 경쟁력이 약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공화당에선 "힐러리가 후보로 선출될 경우 '힐러리 대 반(反)힐러리 구도'로 승부를 걸면 이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올 상반기 분기별 선거자금 모금에서 두 차례 힐러리를 앞서는 등 큰 바람을 일으켰던 오바마 의원의 기세는 주춤해진 상태다. CBS 조사에 나타난 그의 지지율은 23%다. 다른 조사에서도 힐러리의 절반에 불과한 20%대 초반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그런 그에 대해 요즘엔 "부통령 후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힐러리가 후보로 선출되면 그를 러닝 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오바마가 힐러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에 근거한 것으로, 그런 소문이 퍼질수록 오바마는 불리해진다. 그가 최근 "나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사람"이라며 "설사 힐러리가 러닝 메이트를 제안한다 해도 사양할 것"이라고 말한 건 이런 점을 의식해서다.

오바마는 판세를 뒤집기 위해 힐러리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힐러리가 이라크전과 관련해 국민을 기만하고 있으며, 국가 안보에 대해선 공화당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오바마의 참신한 이미지와 대조되는 이런 공세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4년 대선 때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에드워즈는 오바마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경선이 처음 시작되는 아이오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곳에서 이기면 힐러리와 오바마를 추격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는 판단에서다. 이 밖에 빌 리처드슨(59) 뉴멕시코 주지사, 조셉 바이든(64) 상원의원 등이 뛰고 있으나 지지세는 미미하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문제 제기로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앨 고어(59) 전 부통령이 대선 경쟁에 뛰어들 경우 민주당에는 변화의 바람이 일지 모른다. 열혈 지지자들이 그의 출마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나 그는 환경 얘기만 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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