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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칼럼>스콧의 남극탐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1912년3월29일 로버트 F스콧은 데포(보급저장소)에서 18㎞ 떨어진 곳에서 눈보라에 갇혀 죽었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가장 춥고 건조하며 바람과 폭풍이 거센,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다만 지구의 물의 70%가 거대한 빙원에 저장돼 있다.2백년 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은 처음 남극으로 항해할 때 아주 큰 땅덩어리가 있을 것이라고믿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다.
남극대륙 탐험에는 인간의 도전과 희생.발견.죽음이 뒤따랐다.
남극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은 19세기 초부터 시작됐다.아문센은 1910년6월 오슬로를 떠나 남극대륙으로 향했고 영국의 스콧도 남극점을 목표로 항해를 시작했다.
아문센은 두번째 원정이었다.그는 1911년10월20일 남극점을 향해 개썰매를 타고 끝없는 빙원을 달렸다.12월14일,아문센팀 대원들은 말이 없었다.얼마 남지않은 극점 때문이었다.마침내 썰매는 멈추고 아문센은 자신의 손으로 노르웨이 국기를 꽂았다. 한편 스콧팀은 만주산 조랑말로 캐러밴을 시작했다.그러나 추위에 못이겨 조랑말은 곧 죽어버렸다.대원들은 뼈를 깎는 추위속에서 직접 썰매를 끌고 남극점을 향해야 했다.속도는 늦고 동상과 체력저하가 점점 심해졌다.
1912년1월8일 스콧팀은 87일만에 남극점에 도달했다.그러나 먼저 도달한 아문센의 노르웨이 깃발을 보고 허탈함과 실망감에 빠져 그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일어설 줄 몰랐다.
스콧팀은 귀로에 폭풍설을 만난다.실의에 빠진 채 18㎞ 전방에 있는 식량을 찾으러 나섰지만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대원인 오트는 자기의 32번째 생일날인 3월17일 스스로 폭풍설 속으로 걸어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대원들은 영양실조와 괴혈병에 걸려 죽어갔다.
스콧은 3월29일 일기장에『일기를 더이상 쓸 수 없을 듯하다.우리를 돌보아주소서』라고 끝을 맺었다.여기서 우리는 희생정신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최선을 다하는 용기를 찾아볼 수 있다. 요즈음 남극점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가장 쉬운 방법은비행기로 극점까지 날아가는 것이고 다음은 스노 모빌을 이용한 원정과 개썰매 원정이다.가장 어려운 방법은 걸어서 가는 것이다.무동력.무지원으로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탐험이다. 나는 남극땅에서 영하 30도의 추위와 초속 23m의 블리자드를 체험했다.때로는 화이트 아웃(white out)날씨 속에서 남극점을 찾아 끝없는 전진을 했다.우리는 패트리어트 힐을떠나 1천1백㎞를 아무런 지원없이 44일동안 걸어서 남극점에 도달했다.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는 1990년 비행기로 두차례 식량 등을 공급받으며 남극점까지 2천4백㎞를 걸어서 갔다.
내 귀에는 아직도『춥고 배고프다』는 대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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