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시 지방할당제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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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르면 2007년부터 행정고시와 외무고시 등 5급 고시에 지방 인재 채용 목표제를 도입한다고 그제 정부가 발표했다. 합격자 가운데 지방대 출신이 20%에 미달할 경우 부족한 인원을 지방대 출신으로 추가 합격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방대학과 서울소재 대학 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헌법상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데다 코앞에 닥친 선거를 겨냥한 단기 처방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기회균등.공정경쟁이라는 틀이 무너지면서 발생할 역차별의 문제는 심각하다. 단지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성적이 미달하는 데도 합격시킨다면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의 상대적 불이익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공개경쟁 시험인데 단지 지방대라는 이유로 특혜를 줄 수 없다.

미국에서 적용되는 것과 같은 소수자 보호 원칙을 들먹일지 모르나 우리 사회의 지방대학 출신이 소수 그룹은 아니지 않은가. 고시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문이고 지방대학생이라고 하여 고시공부에 불이익을 받은 것이 없다. 지방고교생들의 열악한 조건을 고려한 서울대의 지역균형 선발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총선을 불과 두달 앞둔 시기에 국민적 합의과정 없이 불쑥 튀어나온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군 복무기간 단축, 신행정수도 선포식 등 최근 들어 쏟아져 나온 일련의 선심정책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같은 날 노무현 대통령이 지방언론과의 합동회견에서 "혁명한다는 마음을 먹고 (시험제도를) 뜯어고치겠다"고 언급한 것도 부적절했다. 지방대학 출신의 고시 합격률을 억지로 높여 지방을 우대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망국적 고시 만능 풍조를 지방으로까지 확산시켜서야 되겠는가.

지방대학의 공동화(空洞化)와 지방대 졸업생의 극심한 취업난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의 억지 선심을 베풀기보다 지방대학 졸업생이 경쟁력을 갖도록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심으로는 지방 균형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