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100년] 下. 조선은 '전쟁의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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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백여 년을 되돌아보면 한반도는 '지속적인 분쟁 지역'의 하나라 할 만하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의 한국전쟁까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전쟁들이 한반도를 무대로 벌어졌다.

러.일전쟁 당시와 오늘의 동북아시아는 비슷한 점이 많다. 미.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과, 중.러로 대표되는 대륙세력이 각축하는 가운데 전쟁의 위험성까지 잠재돼 있다.

한반도의 분할통치 문제 등은 이미 러.일전쟁 직전 러시아와 일본 간에 논의된 바 있다. 1백년 전엔 일본과 영국이 손잡고 미국이 이를 지원하는 한편에 남하정책을 편 러시아를 프랑스가 간접 지지하는 형국이었다. 오늘날은 미국의 주도 아래 일본.중국.러시아가 조연급으로 참여해 미국을 견제하거나 지원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형세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제물포(인천) 상륙을 보도한 영국 주간지 '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1904년 4월 9일자 화보. "보기 드물게 잘 조직된 군대 상륙: 한국에서 일본의 군사작전 시작"이란 제목을 달았다.[명지대 LG연암문고 소장]

"러.일전쟁 시기는 한반도 주변 열강의 동아시아에 대한 정책의 원형이 만들어진 시대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러.일전쟁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최덕규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역사는 반복되는가. 흥미롭게도 러.일전쟁을 보도했던 영국의 주간지 '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 1904년 5월 14일자)'는 "역사는 반복된다(History Repeats Itself)"고 언급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작전이 흡사하다는 분석을 통해서다. 중국 뤼순과 조선 인천에 대한 일본군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의 진행 과정은 하와이 진주만 기습에서도 반복됐다.

역사의 반복을 통해 '재미를 본' 일본과 달리 우리는 역사의 반복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변의 힘의 균형을 촉진할 더욱 큰 힘을 키우든가, 그게 아니라면 한반도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할 유연한 사고를 가진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재정 교수.서울시립대) 이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러.일전쟁을 세계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일과도 연결된다.

1백년 전 동북아를 읽는 코드는 '자강(自彊)'과 '균세(均勢)'다. 오늘날엔 새로운 코드가 추가된다고 하영선 서울대 교수는 지적한다.

'변환(transformation)'의 코드를 읽자는 것이다. "미군의 용산기지 이전의 경우만해도 산업혁명 시대의 군사조직을 정보혁명 시대의 군사조직으로 변환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하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각축이 새롭게 전개되는 21세기 동북아시아의 현실에서, 미국의 힘을 정확히 측정하고 활용하는 '용미(用美)'의 관점은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이 시대의 주제"라고 말했다.

열강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경계이기에 쉽게 분쟁지역이 되는 한반도의 운명을 확인하면서, 러.일전쟁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결국 '분쟁지역에서 잘 살아가는 지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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