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특별기고] ‘不倫 열광’의 진화심리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간중앙남녀 불문, 왜 사람들은 불륜을 가슴 설레는 로맨스라고 말하나? 불륜을 ‘번식 본능’만으로 설명 가능한가? 같은 불륜도 남자와 여자가 달리 해석되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으로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대선이 다가온다. 하지만 최근 한 달 동안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소재는 대선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신정아 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부적절한 로맨스’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번 ‘변·신 파문’의 상징어로 떠오른 ‘부적절한 로맨스’가 어디까지 치달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정아 씨 주장대로 단순한 ‘예술적 동지’ 관계에 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의 관계를 불륜이라는 단어와 연결하는 듯하다. 왜 사람들의 상상력은 부적절함의 마지막 단계인 불륜으로 치닫는 것일까? 그것은 혹시 불륜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남녀 간의 사랑, 특히 불륜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올해 공전의 히트를 한 <내 남자의 여자>라는 드라마를 보자. 이 작품은 순전히 남녀의 불륜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사람들은 이 드라마에 열광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어떤 이유 때문 아닐까? 바로 진화심리학에 그 답이 있다.

01 왜 진화심리학인가?
- 인간 본성과 욕망 무시하는 반쪽짜리 주류 심리학의 대안

우선 우리는 진화심리학이 어떤 학문인가 살펴봐야 한다. 사람들은 심리학자 하면 제일 먼저 프로이트를 떠올린다.

그러나 주류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접근과 달리 외부의 자극과 마음의 상관관계 등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중시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심리학의 일차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법은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고려하지 않는 심리학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던 것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1960년대 이후 생물학에서의 진화 이론의 급격한 발전을 심리학에 도입한 것이 바로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많은 행동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진화적 목적에 따라 행해진다고 본다.

예를 들면 단맛과 기름진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를 보자. 현대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단 음식과 기름진 음식은 너무 구하기 쉽다. 건강을 위해서는 오히려 이러한 음식을 멀리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과거에는 정반대였다. 일상생활을 위해 지방과 당의 섭취는 반드시 필요했으며, 당분과 지방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사람들의 유전자)은 진화 단계에서 점차 사라졌다고 진화심리학은 해석한다.

거미나 뱀에 대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감도 이러한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거미와 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진화 과정에서 도태됐으며, 계속 살아남은 유전자를 가진 우리는 두려워한다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진화심리학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바로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이러한 연구를 주도하는 학자는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다(버스는 우리나라의 최재천 교수와 같이 공부했으며, 그는 자신의 저술에서 한국의 사례도 종종 인용한다).

02 짝짓기
- 자신의 유전자 후대에 남기는 전략의 남녀 차이

데이비드 버스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과 성에 대한 심리 차이에 주목한다. 즉,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전략이 다르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선사시대부터 남녀 간에는 명확한 역할 분담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남자는 생산·수렵을 담당하고, 여자는 출산·양육을 담당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은 많은 여성의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에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도 활발하고 남녀평등이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사회 제도의 지속적 발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생산력의 향상에 기인한 최근의 현상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버스는 기본적으로 남녀 간의 관계를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파악한다. 피임이 일반화한 현대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기본적으로 진화심리학이 다루는 인간은 수천 년, 수만 년간 지속된 인간 유전자의 전략인 것이다(버스는 현대사회에서 자동차가 아주 위험함에도 인간이 자동차보다 거미나 뱀에 더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현대사회가 인류의 역사에서 극히 일부분만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남녀 간의 사랑, 정확히 말해 후손을 남기기 위한 짝짓기는 어떠한 전략을 취하는가?

우선 여자는 출산 능력을 보유하며 한 달에 한 번 배란한다. 반면 남자의 정자는 거의 매일 엄청난 양이 생산되며 육체적 능력을 보유한다.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는 곧바로 사랑에서 서로 다른 전략을 수립하게 한다.

여성은 아무리 많은 남성과 관계를 가져도 잘해야 1년에 한 번밖에 출산할 수 없다. 게다가 출산한 자녀의 양육에 남성의 도움이 필수다. 여성의 이러한 신체 조건은 짝짓기에서 안정적 전략을 요구하게 된다. 여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가급적 경제력을 갖추고 정서적 사랑을 주는 남성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반면 남성은 매일 수많은 정자를 생산하며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임신 가능한 여성과의 성관계만큼 퍼뜨릴 수 있다.

따라서 남성에게는 여성과 정반대로 ‘가급적 많은’ 관계를 갖는 것이 진화적으로 유리하다. 진화심리학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남자들이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기를 원한다고 해석한다.

남녀 모두 성형미인에 부정적 태도

그렇다면 남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여자를 선호할까? 바로 아름답고 젊은 여자다. 특히 남자들은 피부가 고운 여자를 선호하는데, 고대에는 피부가 곱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신호 중 하나였다. 남자가 젊은 여자를 선호하는 것도 진화심리학적으로는 그만큼 임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다. 데벤드라 싱 같은 학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들이 이상적으로 간주하는 여성의 신체는 둔부와 허리의 비율이 0.7이며, 그것은 임신에 가장 유리한 비율이라는 것도 발견했다.

반면 여자는 한 달에 한번 생산하는 난자로 1년에 걸친 임신기간을 통해 자신의 후손을 남긴다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과 자녀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를 선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성형미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짝짓기와 다르지 않다. 즉, 이성 선호의 숨겨진 요인이 강한 후손을 남기려는 것임을 생생하게 증명한다는 뜻이다.

성형미인에 대한 남자들의 거부감은 ‘아무리 돈을 들여 아름답게 변한 여자라도 그의 자녀는 원래대로 못생겼을 것’이라는 비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성형미인과 실제로 결혼할 가능성이나 자녀를 가질 의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종종 성형미인을 과격하게 비난한다. 이는 성형미인들이 성형을 통해 남자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보통 여자들에게 성형미인은 참된 자신의 (유전자적) 가치를 왜곡하는 불공정한 경쟁자다.

03 당신, 그놈과 잤나? vs 당신, 그년을 사랑해요?
-불륜에 대한 남녀 간 서로 다른 질문과 대응 전략

남자와 여자의 짝짓기 전략의 차이는 결국 불륜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남자는 부인과 결혼하고 자녀를 가진 이후에도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후대에 남기기 위해 불륜 행위를 하는 것이 적절한 전략이 된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가 불륜 없이 배우자에게 충실하고자 한다.

게다가 배우자 몰래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 대부분은 내연의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나는 것을 재앙으로 여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남자들이 비록 내연의 여자와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더라도 그 행동의 기저에는 후손을 남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배우자가 있는 여자와의 불륜에 대해 진화심리학은 좀 비약일 정도의 해석도 내놓는다. 남자는 불륜 관계인 여자의 배우자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녀를 키우게 하고 싶어한다는 것. 이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자신의 후손을 유지하는 뻐꾸기의 전략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남자가 자원을 벌어오고 여자가 자녀를 양육하는 전통적 시스템에서 남자의 불륜은 아내와 자녀에게 돌아갈 자원이 빼돌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로 여자가 불륜에 빠지는 경우 남자는 자신이 벌어오는 자원이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다른 남자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에게 투자되는 것이다.

불륜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남자의 경우 자신과 관련 없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서 훨씬 더 냉혹하게 드러나는데, 수컷 사자의 경우 암컷과 새로운 짝짓기를 하면 암컷의 옛 새끼를 물어 죽인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슈퍼맨 리턴즈>에서 슈퍼맨의 옛 연인인 로이스는 슈퍼맨과의 관계에서 얻은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 리처드와 약혼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은 부인의 옛 아이들을 영화 속 리처드와 같이 아무런 편견이나 악감정 없이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러한 도덕적 태도는 생물학적 명령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동성애자 진영 일부는 <슈퍼맨 리턴즈>를 보며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잘 키우는 리처드가 전통적 이성애 가족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적 관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보통남자들이 이러한 ‘쿨’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상황이 이러한데, 여자가 자신을 속이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정자 중 상당수는 자살특공대?

불륜에 대한 이러한 상이한 결과는 불륜에 대응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설명한다. 남자는 자신의 애인 혹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친밀해지면 곧바로 ‘그 녀석과 동침했나?’라는 질문을 한다. 반면 여자는 자신의 남편이나 애인이 다른 여자와 친밀해지면 ‘그 여자를 사랑해요?’라고 질문한다.

여자로서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일시적 관계를 맺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사실이지만, 남자가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상 가족에게 돌아올 자원을 빼돌릴 위험은 적다. 반면 남자는 여자와 다른 남자 간의 관계가 일시적이든 장기적이든 상관없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대응 전략을 발전시켰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상대 배우자의 불륜 신호를 감지해 내는 능력의 발달이고, 그에 대응한 질투심의 발달이다. <처용가>의 처용처럼 상대방의 질투에 초연한 사람은 진화 과정에서 도태됐다.

최근의 생물학적 성과는 이러한 남녀 간의 은밀한 공조와 투쟁과 관련해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로빈 베이커의 <정자전쟁>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남자의 정자 중 상당수는 수정에 적합하지 않으며, 이들의 주 목적은 자신의 여인의 자궁 속에 남아 있는 다른 정자를 파괴하는 자살특공대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04 왜 사람들은 불륜 이야기에 열광하나?
- 인간의 종 유지에 필요한 본능

상당수의 여성잡지는 남녀 간의 치정, 특히 그 중에서도 불륜 또는 그로 인한 갈등과 파경을 다루기를 즐긴다. 그런가 하면 남성잡지에서는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 등에 대한 테마를 자주 소개한다.

다른 사람의 불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분명 고상한 처신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로 인해 자신의 배우자의 불륜 신호를 감지해 내는 능력을 높이게 된다. 또한 이미 불륜에 빠져 있는 사람이면 대책도 세울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처용가>를 보자. 사실 처용가에서 처용의 행동은 무기력하기 이를 데 없다. 처용의 이러한 무기력함은 자신의 후손을 남기지 못하는 위험에 처하게 한다.

데이비드 버스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사람은 진화의 과정에서 사라져 갔으며, 현재에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지 못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사람들이 변양균 전 실장과 신정아 씨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고 상상력을 발동하는 것도 이 연장선상이다.

모 일간지의 신씨 누드 사진 게재 행위도 진화심리학적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른 사람의 불륜에 대한 관심은 인간이라는 종의 유지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신씨 사진 게재에 대한 비난에 맞서 ‘알 권리 충족’을 내세웠다. 사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알 권리’ 자체가 타인에 대한 정보 취득 수단이며, 이는 생존의 필수 요소다.

05 정 주지 않는 남자? 그럼에도…
- 남자 상당수 정서적 교류 없이 즐기기 위한 성관계 선호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로 돌아가 보자. 이 드라마는 준표(김상중 분)가 옛 여인인 화영(김희애 분)과 불륜에 빠지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크게 인기를 얻은 비결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위의 등장인물들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지수(배종옥 분)의 언니인 은수(하유미 분)가 나오는데, 은수의 남편인 달삼(김병세 분)은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아내와의 이혼은 절대 바라지 않는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남자의 바람은 어쩔 수 없다. 단지 지나가는 유흥일 뿐이며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이상하다.’

그는 부인 이외의 여자와 ‘불 같은 사랑에 빠지는’ 준표를 이해하지 못한다(실제 드라마에서 달삼은 지적인 준표와 달리 돈이 많으면서 좀 무식한 한량으로 그려진다). 그는 다른 여자와의 성관계를 즐김에도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온 남자들의 불륜에 대한 정당화다.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며 바람을 피우는 것은 남자의 본성이지만 남자의 바람은 일시적이며 정을 주지 않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데이비드 버스는 많은 연구를 통해 많은 남자가 장기적 관계나 정서적 교류 없이 순전히 즐기기 위한 성관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진화심리학적 설명에 따르면 남자의 ‘정을 주지 않는’ 성관계 전략은 한계에 부닥친다. 극단적으로 모든 남자가 일시적 성관계만 선호한다면 여자는 남자가 불륜으로 자원을 빼돌리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마치 <내 남자의 여자>에서 은수가 남편의 바람기를 혐오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용인하는 것처럼.

06 가슴 설레는 로맨스
- 도덕적 비난 불구, ‘사랑 없는 섹스’보다 순수할 수도

잠시 변양균·신정아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로 돌아가 보자. 신씨가 비록 나이 차이는 많지만 능력 있는 변 전 실장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는 남녀 모두에게 매우 합리적 전략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쏟아지는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검찰의 ‘이메일 연서’ 발표에서 드러나듯 변 전 실장은 신씨에게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이는 가슴 설레는 로맨스로 자신의 남성성 확인에 이어 삶의 활력소로 삼았을 공산이 크다. 신씨 역시 변 전 실장을 매개로 자신의 성취감을 높여 갔을 것은 분명하다.

사실 많은 남자가 돈으로 여성을 사기도 하며 <내 남자의 여자>의 달삼처럼 불륜의 상대방인 여자에게 어떠한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남자의 진화의 결과이며 적절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변 전 실장의 행위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그가 결국 사적 이유로 국가의 자원 배분의 흐름을 왜곡하며 종국적으로 사회의 신뢰를 저하시켰기 때문이다. 변 전 실장에 대한 비난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남녀 간의 부적절한 불륜 관계는 사적인 문제이며, 비록 부도덕하지만 제3자가 관심을 갖는 것이 오히려 당사자에 대한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변 전 실장의 부적절한 행위의 결과를 단순한 가정의 문제로만 축소시키는 부당한 물타기다.

만일 어떤 고위 공직자가 자녀를 위해 혹은 부모를 위해 예산을 유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을 부모의 고귀한 자녀 사랑 혹은 자녀의 효심의 발로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가족 간의 사랑 혹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무리 고귀해도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07 유전자 결정론을 넘어
-인간에게는 ‘동물적 본능’ 넘어서는 ‘윤리적 가치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정말 인간은 유전자가 명령하는 대로 행하는 유전자 전달 기계에 불과한 것일까? 남녀 간의 짝짓기 전략에 수긍하면서도 실제로 사람들이 여러 형태의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어떠한 것이 있다는 방증 아닐까?

물론 생물학은 인간을 동물의 한 종으로 파악하며, 유전자의 복제와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한다. 또한 현재의 생물학은 인간의 이타적 행위에 대해서도 인간의 이타적 행위가 인간이라는 종의 전체의 유지에 필요하다는 식의 합리적 설명을 내놓는다.

인간은 ‘자연의 상처’다

그럼에도 인간의 행동에는 단순한 유전자의 명령을 넘어서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는 탁월한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의 문화를 유전자와 비슷한 밈(Meme)으로 상정하며, 인간은 유전자의 맹목적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의 거장인 데이비드 버스도 자신의 연구가 남자와 여자의 성심리를 탐구하는 것일 뿐, 남자(와 여자)의 불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언어본능>을 저술한 스티븐 핑커도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다는 내용의 ‘빈 서판’에서 자신의 이론이 무조건적 결정론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신씨의 누드 게재에 대해서도 이러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물론 신씨의 누드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언론의 임무인 알 권리의 충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사고가 나면 모든 신문이 사고 현장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하면서도 처참한 시신 사진을 게재하지는 않는다. 정보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참혹한 시신을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신씨 사건에서 사진이 입수된 사실을 보도하는 것과 (비록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고 하지만) 사진을 게재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사람들이 신씨 사건에서 신씨의 누드 사진을 보고 싶어하면서도 일간지에 게재된 사진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단순히 위선의 발로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인간 본성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은 슬라보예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본질적으로 ‘자연의 상처’다. 인간은 본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재난사고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않는 것을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 역시 ‘인간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윤리를 가진 인간에서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이라면 인간적인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오직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만이 자신의 본능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것을 포기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한다.

김상호_한국은행 충북본부 조사역[lacan001@naver.com]

김상호는

197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교 졸업, 동대학원 석사. 2003년 한국은행 입사 후 현재 충북본부 조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현대철학과 정신분석을 연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생물학과 인지과학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번역서 <라캉과 영화이론>을 출간할 예정이다.

<월간중앙 11월호>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J-Hot] 당신 그놈과 잤나? vs 당신 그년 사랑해요?

[J-Hot] "지킬 건 지켜야지… 전 청장 출근길 큰 실수"

[J-Hot] 38세에 1500조원 주무르는 사나이

[J-Hot] 최고MC 손석희 인터뷰에 네티즌 기분 상한 이유

[J-Hot] 동아제약 강문석 이사, 명분·세력 잃고 '백기투항'

[J-Hot] "베트남 女탤런트 섹스비디오 '남친' 친구들이 유포"

[J-Hot] "여관까지 안내 좀…" 동료 여직원 유인해 '몹쓸 짓'

[J-Hot] '시골의사' 박경철 "주시투자보다 의사가 더 어려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