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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립대 - 지방 국립대 '로스쿨 동맹' 왜 깨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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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교육인적자원부 고위 관계자와) 10초만 통화할 수 있게 해 달라…."

23일 오전 국립대.사립대 총장들이 모인 회의장에서 한 대학 총장은 교육부 쪽에 이런 전화를 걸었다. 손병두(사립대총장협의회 회장) 서강대 총장, 고충석(지역거점국립대협의회 회장) 제주대 총장이 이날 "교육부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총정원안(2009년 1500명, 2013년 2000명)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정원이 3200명 이상 안 될 경우 공동 대응하겠다"는 성명서에 사인을 하기 직전이었다. 각 대학들은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정부의 로스쿨 정원안에 반대하면서도 뒤돌아서는 각자 유.불리 계산을 해왔다.

실제로 강원대.부산대.전남대.제주대 총장들이 23일 사립대 총장들과 공동 대응하자고 약속한 지 10시간 만에 청와대로 가 성경륭 정책실장에게 "지역 균형 약속을 지켜 달라"고 요구했다. 한 국립대 총장은 "이번에 로스쿨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리가 대학들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대학 간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쿨 인가 기준으로 '지역 균형'을 들고 나온 것도 지방대를 움직이게 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전형적인 '분할통치'수법(?)=김영철 건국대 법대 학장은 "대학을 서로 이간질시키고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지역할당 문제를 자꾸 거론하는 것 같다"며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 자체에 동감하는 마당에 이를 강조하는 발언이 빈번하게 나오는 것은 경계한다"고 말했다.

지방 국립대들은 정부의 '지역균형론'에 동조하고 있다. 특히 이번 로스쿨 인가 문제가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사립대들은 초조하다. 사립 A대 관계자는 "국립대가 공동 대응한다는 약속을 깬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교육부가 지역 균형을 명목으로 국립대를 끌어들이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됐다"고 말했다. B대학 관계자는 "정부가 자신들에게 동조하는 국립대를 떼내 사립대와 대립하게 하는 전형적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립대 가운데서도 로스쿨 지정 가능성이 큰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간에 미묘한 입장 차가 있다"고 덧붙였다.

고려대.연세대 등은 겉으로는 교육부 안에 반대하면서 상당히 느긋한 입장이다. 이에 비해 로스쿨 유치를 확신할 수 없는 소규모 수도권 사립대들은 3000명 이상으로 '파이'가 커지지 않을 경우 인가를 확신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로스쿨 인가 신청을 집단으로 거부하자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지방대의 '2000명 조정안'에 대해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거점 국립대들까지 꼭두각시로 내세워 학계를 분열시키는 데 이용하고 있다"며 "임기를 불과 5개월여 남긴 청와대의 행태는 끝없이 졸렬하다"고 비판했다.

◆국회.정부 갈등=여야 국회의원들은 26일 교육부가 원안대로 총정원을 보고할 경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회교육위원회 의원 대부분은 "2009년 첫해 정원을 2000~2500명에서 정부가 보고한다면 용인하되 1500명 선은 절대 불가하다"고 밝히고 있다.

25일엔 정원 3000명 이상을 주장하는 의견도 정치권에서 나왔다. 이광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과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을 위한 로스쿨이 되기 위해서는 변호사 3000명 구조로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총정원 3000명 안에 대해 찬성한 의원들은 대통합민주신당 33명, 한나라당 13명, 민주노동당 1명, 무소속 3명 등 총 50명에 달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도 "기존안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강홍준.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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