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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흥 부호 트렌드 "가훈 있어야 진짜 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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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모든 기회에는 의무가, 모든 소유에는 책무가 따른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I believe that every right implies a responsibility: every opportunity, an obligation; every possession, a duty)."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 앞 동판에 새겨진 이 글귀는 록펠러 가문을 크게 일으킨 존 D 록펠러 주니어의 신념으로, 후손에게 가훈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대의 뜻을 담은 가훈은 이젠 미국에서 록펠러 가문처럼 유서 깊은 집안의 전유물이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가훈을 정해 후세에 전하는 것이 요즘 신흥 부호들의 주요 트렌드"라며 "가훈을 근본 삼아 대대손손 명문 가문을 잇겠다는 백만장자가 늘고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가족 헌법'으로도 불리는 가훈은 짧게는 한 문장, 길게는 열 쪽을 넘기도 한다. 가치.유산.책무 등이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다. 가족의 신앙.교육에 대한 지침을 포함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이런 유행이 생긴 것은 운용 자산이 100만 달러(약 9억2000만원)가 넘는 가구가 450만에 이를 정도로 부자가 많아진 데다, 신흥 부호의 대부분이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기업가들은 회사에서 하듯 자신의 비전을 가족에게 전하고 싶어한다는 것.

그러자 가훈을 만들어주는 업체도 우후죽순 생겼다. 캘리포니아의 가훈 제작 대행업체 '돈과 의미, 그리고 선택'의 대표는 "지난 5년간 매출이 2배로 늘었고, 매주 한 건 이상 의뢰가 들어온다"며 "가훈은 가족의 유대를 다져 주고 그 의미와 나아갈 바를 재정립해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자들이 앞다퉈 가훈을 정하는 데는 재산을 둘러싼 다툼을 방지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WSJ는 전했다. 그래서 "사위나 며느리는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가족의 범위를 가훈에 못 박는 집안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하얏트를 소유했던 미국의 프리커 가문이 좋은 사례다. 호텔과 여러 제조업체를 소유했던 이 가문은 창업주의 손자 두 명이 사이좋게 경영했다.

이들은 영원히 가족이 함께 사업 꾸리기를 바란다며 1995년 '가족에 충실하고 사회에 공헌할 것'이란 가훈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주 사망 뒤 후손 사이에 재산다툼이 벌어지면서 회사가 조각났으며, 가문의 영광도 빛을 바랬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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