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한 권 번역에 1년 이상 걸려 버거워도 21권 모두 해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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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겁긴 하지만 어떤 일이 있든 끝까지 해낼 생각입니다”

박경리 소설 『토지』의 독일어 판 번역에 7년 째 매달리고 있는 한정화(45·사진) 씨. 국제도서전 기간 중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난 그는 분명한 우리말로 이 같은 의지를 보였다. 1974년 서울 연희중학교를 마친 뒤 이주해 독일 생활이 벌써 30년이 넘었고 독일인 남편 사이에 삼 형제를 두었으니 독일인이 다 되었다고 할 만한데 그의 모국 사랑은 여전하다.

미술사·한국학을 전공했는데 언론인이었던 부친의 영향 때문인지 훔볼트 대학에서 ‘기지촌 문학에 비친 양공주상 연구’로 한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훔볼트 대학 한국학 강사· 시민학교 한국어 강사· 동시통역사 등 다양한 한국 관련 일을 하다가 헬가 피히트 교수와 함께 소설 『토지』의 번역에 나섰다.

“우연히 번역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피히트 교수를 거들다가 아예 공동 번역하기로 했죠.”

피히트 교수가 초벌 번역을 하면 그가 감수하고, 다시 의견 교환과 확인을 거치느라 한 권 번역하는 데 일년 이상 걸리는 고된 작업이란다. 한국어판 총 21권 중 이제 9권의 번역에 들어갔을 정도다.

그는“박경리 선생의 작품은 불교나 한국 민속 등 광범위한 지식을 담고 있는데다 사투리가 많고, 대화의 주체가 외국인에게는 불분명한 대목이 적지 않아 번역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또 “제가 어려서 한국을 떠난데다 작가도 아니어서 문학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지만 첫 독어판을 내는 데 만족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김혜순 시집이나 백범일지 등을 번역하기도 했으니 한국 문학의 독일 진출 첨병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피히트 교수가 73세의 고령이어서 그의 역할은 갈수록 커질 듯했다.

완간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를 번역판에 대한 독일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워낙 소형 출판사에서 냈고 홍보도 하지 않아 한국 관련자들 외에는 미미하죠. 일반인들중에는 ‘옛날 독일 농촌풍경과 흡사하다’며 특히 1권을 재미있어 하는 노년층들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장차 독일인을 위한 한국문학통사를 써 보고 싶다는 그는 “번역을 잘 하려면 외국어는 물론 한국어에도 능통해야 하는데도 한국에서는 외국인 번역가를 더 신뢰하는 듯하다”고 한국 문단· 출판계에 살짝 섭섭함을 내비쳤다.

프랑크푸르트=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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