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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채널 고정, 라디오 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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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마포로를 지나는 버스 안, 날은 흐리고 운전기사도 승객들도 짜증 가득한 표정입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마법처럼 "와하하” 웃음이 터집니다. ‘람바다’를 부르며 치근대던 남편과 결국 정들어 결혼했다는 한 주부의 사연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순간입니다. “람바다는 이렇게 부르면 된다네요. ‘소다 미숫가루 베이킹파우더 하드꼭다리이이~” 진행자의 차진 노랫가락에 퇴근길 오후의 짜증이 싸악 씻겨 갑니다.

 라디오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라디오는 한낮의 운전 길에 쏟아지는 졸음을, 점심 지난 사무실의 나른함을 웃음 한 방으로 날려 버립니다. 무심코 지나던 길목에서 추억의 ‘그 노래’를 만나면 옛 기억에 가슴 뭉클하지요.
 그래서일까요.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네(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고 노래했던 1980년대 팝 듀오 버글스의 암울한 전망과 달리 라디오는 여전히 자기 영역을 굳건히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목소리만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라디오 스타’들이 있습니다. 영상매체와 인터넷이 라디오를 흔들고 있지만 ‘진실함’과 ‘소박함’이 살아 있는 라디오는 여전히 매력덩어리라고 이들은 힘주어 말합니다.
 목소리가 더 익숙한 이들의 얼굴, Week&이 공개합니다.

글=이영희·안충기·홍주연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그녀에게 걸리면 웃지 않곤 못 배긴다
오후 4:00 ~ 6:00 FM 95.9 MHz
'지금은 라디오 시대' 진행 최유라

 ‘최유라, 조영남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매일 오후 4시 MBC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 콜이다. 두 사람의 이름 순서에는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사연이 있다. 1995년부터 13년째 이어온 프로그램의 이름은 이랬다. ‘이종환 최유라의~’, ‘전유성 최유라의~, 혹은 ‘이재용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그러던 것이 지난 해 말 조영남이 상대 진행자로 결정되면서 ‘최유라, 조영남의 라디오 시대’로 바뀌었다. “사실은 전부터 왜 최유라 이름이 뒤에 나오느냐는 청취자들의 항의가 심심찮았대요. 다들 신경을 안 썼는데 조영남씨가 ‘맞다. 레이디 퍼스트 아니냐’고 하는 바람에 올해부터 바뀌게 된 거죠.” 최유라(41) 본인도 ‘이름 먼저 나오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지만 내심 뿌듯한 눈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니 늦은 감마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유라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전신인 ‘100분 쇼’ 시절부터 쟁쟁한 남자출연자들을 ‘갈아 치워’ 가며 이 프로그램을 지켜온 간판스타다. 개성 강한 남자 파트너들을 ‘어르고 달래며’ 진행하는 솜씨도 일품이지만 그의 재능은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을 때 제대로 빛난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는 최유라가 아니었으면 그만큼 인기를 끌기 어려웠을 코너다. 청취자들이 보내온 사연이 감칠맛 나는 그의 입을 거치면 신명 나는 판소리 한가락으로 변한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스스로 이야기를 즐기며 방송하는 까닭이란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여자 진행자들이 방송하면서 ‘와하하’ 소리 내 웃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윗사람들께 불려가 웃음소리가 크다며 혼나기도 했죠. 지금도 저는 방송 전에 사연을 미리 읽지 않아요. 그래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거든요.”

 

라디오가 무작정 좋았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20대 초반, 영화 ‘수탉’에 억척스러운 처녀 역할로 출연해 대종상 신인연기상까지 받았지만 감독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는 연기현장에 좀처럼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라디오를 만났다. “이문세씨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에 게스트로 잠깐 출연했는데 담당 PD분이 ‘진행 잘하는데 라디오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당시 최고 DJ였던 정재환씨와 ‘깊은 밤 짧은 얘기’라는 심야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 됐다.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어요.” 청취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집에 가져가 꼬박꼬박 읽고 어떻게 답변할까 밤마다 ‘공부’ 했다. 평생 할 일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매체보다도 진행자와 청취자가 솔직하게 만날 수 있는 매체가 라디오라는 확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상대 진행자를 고르는 데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라디오에 대한 사명감이 있기 때문에 라디오를 TV로 가는 중간다리 정도로 생각하거나, 청취자들과 솔직하게 맞설 ‘내공’이 없는 사람들과는 함께 진행하기 싫어요.” 그래서 제작진은 상대를 고를 때 최유라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100분 쇼’의 서세원, 황인용부터 ‘지금은 라디오시대’의 이종환, 전유성, 조영남까지 ‘최유라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이들이다. “이 분들은 모두 뚜렷한 자기 세계를 갖고 있어요. 그만큼 독특하고 자기주도적인 부분도 있죠. 이들에게 지지 않으려면 이쪽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해요. 이런 남자들은 똑똑하고 예의 바른 여자들한테는 함부로 못 하거든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했다. ‘아버지뻘’ 되는 남자 진행자에게 “얘한테는 왠지 반말을 못 하겠어”라는 ‘칭찬 아닌 칭찬’도 들었다.

 89년에 라디오에 입문했으니 내년이면 20년이다. 그동안 ‘설화(舌禍)’ 한번 없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잘난 척이 아니라 정말 모범생 스타일이라서”라고 말한다. 지금도 방송 외의 시간은 살림하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두 아이와 메신저와 전화로 이야기하고, 요리, 꽃꽂이, 영어·중국어 공부하는 데 쓴다. “제가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학생으로 그렇게 열심히 사는 게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전해져요. 너무 모범생 같은 답변이지만 라디오를 하면서 ‘내 삶이 대본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라디오와 인생이 함께 성숙해 간다는 것. 그 매력이 저를 계속 붙드네요.”

이영희 기자

아가씨도 아저씨도 10개월 만에 사로잡다
오후 10:00 ~ 12:00 FM 93.9 MHz
'꿈과 음악 사이에' 진행 허윤희

“함께한 두 시간, 오늘도 행복했어요.”
 매일 밤 12시 CBS FM(93.9 MHz)의 ‘꿈과 음악 사이에’를 진행하는 허윤희(26)씨는 이 말로 방송을 마친다. 촉촉한 음색, 말끝을 늘이며 차분하게 맺는 말투가 그의 장기다. 인터넷 게시판에도 허씨의 목소리에 대한 칭찬이 줄을 잇는다. “사람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목소리를 가지셨어요”(이금순). “푸근한 목소리에 잠이 절로 들 때도 있습니다.”(이찬웅). 경력 3년차, 그것도 지역 방송 DJ와 리포터 경력이 전부였던 그가 진행을 맡은 지 10개월 만에 이 프로그램의 청취율은 10배 이상 뛰었다. 서병석 담당PD는 “젊은 층부터 50대까지 끌어안는 목소리가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전문 DJ로 자리 잡았지만 그는 원래 아나운서 지망생이었다. 경희대 국제관계학과 4학년이던 2004년, 남들처럼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10군데 넘는 회사에 시험을 봤다.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다. ‘방송의 꿈을 접어야 하나’고 좌절할 때쯤 경기방송에서 리포터 자리를 얻었다. “아나운서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었어요. 무조건 방송을 하고 싶었죠.”

 기회는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눈여겨본 제작진이 심야 라디오의 DJ를 제안한 것이다. 혼자 음악을 선정하고 대본도 쓰며 방송을 진행했다. 라디오의 매력에 푹 빠진 것도 이때였다. “청취자들이 속내를 털어놓은 사연을 보면서 외롭고 힘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지난해 9월 CBS의 전문 MC 공채에 합격했고 올해 초부터 밤 10시에 시작하는 ‘꿈과 음악 사이에’ 진행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방송이 “시류에 역행한다”고 표현했다. 음악도 신곡보다 1990년대 가요를 틀고 그 흔한 연예인 게스트나 콩트도 없다. 방송에서 특별한 재주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라디오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밤 시간대 주 청취층인 10대들보다 지금은 성인이 된 ‘라디오 키드’를 위한 방송을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신청곡을 틀고 사연을 읽는 ‘정공법’을 고수한다”는 설명이다. 성인을 겨냥한 프로그램인 만큼 청취층도 다양하다. 밤샘 업무를 하는 직장인, 아들을 군대에 보낸 주부, 취업 준비를 하는 대학생들이 사연을 보낸다. 허씨는 이들의 글 하나하나에 몇 시간씩 고민하고 답을 한다. 성숙한 멘트 탓인지 30대 청취자들이 ‘언니’ ‘누나’라고 부르는 일도 많다.

 그의 꿈은 ‘뚝배기 같은 방송’을 만드는 것이다. “한 순간에 ‘빵’ 터트리는 것보다 사람들 곁에 서서히 다가가고 싶어요. 시대가 변해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고 믿습니다.”

홍주연 기자

20년 동안 ‘현대사 50년’을 목소리로 쓰다
오전 11:40 ~ 12:00 FM 95.9 MHz
‘격동 50년’ 해설 김종성

 점심 즈음 택시를 탔다. 기사에게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뭐냐고 물어봤다. 때마침 MBC로 채널을 돌리던 기사는 ‘격동 50년’의 골수팬을 자처했다. 김종성 해설자의 목소리에 이끌려 들어간다고 했다. 정작 인터뷰를 위해 여의도에서 만난 당사자의 반응은 예상 밖이다.

 

자기 목소리에 나처럼 불만이 많은 사람 없을 걸요. 젊었을 땐 라디오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가 이상했어요. 카랑카랑하잖아요. 매력 있게 카랑카랑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사람들이 다들 좋다는 거예요. ‘격동 50년’의 해설을 20년 동안 해올 수 있었던 건 주변의 격려 덕분이었지요. 김기덕이 제 동생이에요. ‘2시의 데이트’를 24년간 진행해 기네스북에 올랐어요. 형제가 목소리로 먹고사니 조상님 덕이죠. 이번에 산소에 가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어요. 시조를 가르치던 아버님과 어린 우리에게 책 읽어주기 좋아하던 어머님의 영향을 받았나 봐요.

 1988년 4월 1일, 4·19를 다루며 ‘격동 50년’은 첫 전파를 탔다. 그때 이름은 ‘격동 30년’이었다.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루다가 유신시대 정치인들의 반발로 91년 몇 달 쉰 것을 빼고는 쉼 없이 달려왔다. 많은 연출자, 작가, 성우들이 오고갔지만 그만은 한결같았다. 대한민국 최장수 라디오 드라마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젊어서 술·담배 끊었어요. 직업에 대한 예의지요. 내가 그러면 화장하지 않는 탤런트와 같잖아요. 최선을 다해도 100%의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데 남 하는 거 다할 수는 없지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어요. 몸가짐 마음가짐을 조심하려 애쓰죠.

 밥 먹자는 사람이 많지만 웬만하면 피한다.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박철언, 린다 김과도 만나봤지만 뭔가 어색해 편하지 않았다. 선거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92년 대선 때는 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에서 선거방송을 부탁해 왔다. 그는 비용을 아주 세게 불렀다. 부러 그랬다. 얼마 전에도 모 대선 후보 진영에서 같은 제의를 해 왔다. 팔자 고칠 만큼 돈 많이 주면 하겠다고 그랬더니 소식이 없다.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한 엉뚱한 곳에 눈 돌릴 생각이 없다. 정치판에 목소리를 파는 순간 쌓아온 이미지는 무너지고, 프로그램의 신뢰가 떨어질까 걱정해서다.

 그를 보고 놀랐다. 예순여섯 나이에 놀라고 사십대의 외모에 놀랐다. 하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어 스스로 목소리가 불안하다. 오디오북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다. 요즘은 100시간짜리 우리나라 삼국지를 녹음하고 있다. 30여 시간 분량을 마쳤고 나머지를 올해 안에 끝낼 계획이다. 돈 안 되는 거 알지만, 주위에선 미련한 짓이라 이야기하지만 45년을 바라보는 성우생활의 자존심을 걸었다. 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오디오북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가 미련한가. 누가 알아주는 것 바라지 않는다는 그. 운전기사들이 목소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 점심으로 함께 먹은 청국장처럼 그는 소박했다.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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