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고위급회담 한국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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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北-美3단계 고위급회담은 主의제인 북한핵 문제의 타결보다 金日成死後 金正日이 지향하는 대외정책을 엿볼 수 있는 시험대라는점에서 더 큰 관심을 끌고있다.
北韓은 이번 회담이 金正日의 권력장악을 처음으로 대외에 공개적으로 과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민감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지난번 회담과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면 회담은 순조롭게진행되겠지만 태도가 바뀔 경우 회담은 다시 원상태로 돌려질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의 회담쟁점은 미국이 북한의 핵투명성을 요구하고 북한은 이를 수용하는 대신 흑연원자로의 경수로 전환지원등 경제원조와 외교적 인정을 얻는 것으로 압축된다.
따라서 金日成사후에도 북한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이번 회담에서양측은 뚜렷한 테두리안에 세부사항만 그려넣으면 쉽게 합의를 도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3일 회담을 위해 제네바에 도착한 북한대표단의 태도는작은 변화의 단면을 엿보이게 했다.
지금까지 회담에 앞서 내비쳤던『잘 되겠지요』등의 의례적이지만낙관적인 표현을 극도로 자제한 것이다.
지난달 회담에 앞서 북한의 姜錫柱대표는 성명을 통해 『朝-美쌍방이 이해를 도모하는 방향에서 협상에 임한다면 결실을 이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핵문제 타결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姜대표는 이날 공항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을 따돌리고 몰래 빠져 나갔고,許鐘 외교부대사가 대표단의 도착사실만을 간단히발표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許대사는 권력내부의 엄청난 변동에 불구하고 『북한의 정책은 시종일관하다』며 표면적으로 큰 변화가 없음을 강조했으나 회담전망이나 쟁점등에 대해 『해봐야 알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답변을 회피했다.
5일 열리는 1차회담에서 북한측이 먼저 기조연설을 하겠다는 것도 金正日의 핵정책을 金日成의 그것과 차별화 하겠다는 신호로관측되고 있다.
미국도 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만 이번 회담을 변화된 북한의권력기류를 감지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대화의 가치만 있다면 수차례의 연쇄회담을 통해서라도 매듭을 짓겠다는 입장이다.
북핵문제의 최종담판장으로 점쳐왔던 제3단계 고위급회담은 자칫金正日이 추구하는 북한정책이 金日成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일 경우 새로운 걸림돌에 부딪쳐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네바=高大勳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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