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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성공으로 두뇌 양성 ‘부실’ 덮지 못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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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05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교육계 원로들은 우수한 몇몇 인력이 해외로 진출한다고 국내 대학원의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단정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몇몇의 성공으로 우리 교육현실을 덮을 수 없다”며 “앞으로 박사 수를 자꾸 늘리기보다 질 관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총장은 “박사 배출을 줄여 나가는 한편 기존의 박사들을 사회가 수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국내 박사를 국내 대학이 적극적으로 뽑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박사를 고려대가 뽑고, 연세대 박사를 서울대가 뽑는 식으로 교차해 흡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토종 박사의 해외 진출을 보는 교육계 시각

토종 박사의 해외 진출은 우수 인력 유출이란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과거처럼 애국심에 호소해 인재들을 국내에 붙들어 두거나 해외로 나간 이들의 귀환을 기대하긴 어려운 시대인 만큼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글로벌 인재의 이동은 지구촌 시대에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우리가 인재들을 지키고 끌어 모으려면 이들에게 비전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박정희 대통령 시절 KIST(지금의 KAIST)에서 박사들 데려오듯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1965년 출범한 KIST는 대통령의 연봉을 능가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설립 2년 만에 핵심 과학자 35명을 유치한 바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류지성 수석연구원도 “고급 두뇌를 확보하기 위해선 대학 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 규모(2004년 국내총생산의 0.5%)를 1% 수준으로 늘려 세계적 수준의 교수를 확보해야 한다”며 “최고의 교수 한 명은 고급 두뇌를 모으는 집적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

한국은 이미 박사의 대량생산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 해에 배출된 국내 박사 숫자는 80년 513명에서 2006년에는 8909명으로 늘었다.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인구 1만 명당 연간 박사 학위자(0.56명)는 일본(0.44명)보다 높은 선진국 수준이다.

토종 박사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 속에 있다. 두뇌강국으로 가기 위한 ‘인력 풀(pool)’ 확보라는 측면에선 고무적인 현상이다.

공급 과잉으로 갖가지 문제점도 생겨났다. ‘박사 취업난’이 대표적이다. 2001~2004년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3241명 가운데 의·치대 박사를 제외한 2684명 중 37%는 임시직 연구원 등 비정규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앙일보 2005년 3월 30일자 탐사기획 ‘서울대 박사공장’>

국내 박사는 쏟아져 나오는 데도 이공계 분야는 ‘풍요 속 빈곤’이다. 한국에서 배출되는 이공계 박사 학위자 수(2002년)는 미국의 6분의 1,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바이오·나노·컴퓨터 과학 등 첨단 산업 분야의 박사 배출 규모는 미국의 7% 선이다.

저명한 과학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실적도 낮은 편이다. 2001~2005년 과학논문인용색인(SCI·Science Citation Index)의 한국 논문 점유율은 2.4%, 피인용 횟수 점유율은 1.6%였다. 중국은 각각 3.1%, 5.6%로 한국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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