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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를찾아서>미국의 민주주의-알렉시스 드 토크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최종일 바스티유감옥의 열쇠를 손에 쥔 혁명군사령관 라파예트가 곁에 있던 토머스 페인에게 『이 열쇠를 조지 워싱턴에게 전달하라』고 했던 일화는 美佛관계의 우호국면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런만큼 프랑스인들 의 미국에 대한 시각은 매우 관대하다.토크빌의 『美國의 民主主義』(1835 & 1840)는 그같은 분위기의 산물들 중 가장 탁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필자도 프랑스인이 쓴 미국에 관한 저작들중가장 인상적인 것을 이 『미국의 민주 주의』와 프랑스문화의 自負였던 앙드레 모로아의 『미국사』(1943)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타국인이 쓴 제법 잘된 그런 觀察書는 아니다.그것은 미국정치에 관한 가장 훌륭한 洞察書의 하나다.미국의 민주정치에 관한 가장 고전적인 두편의 저작을 들라면우리는 별다른 이의없이 제임스 매디슨 등의 『연방주의 론』과 이 책을 들지않을 수 없다.사실상 토크빌의 이 저서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관한 최초의 경험적 연구라는 의의를 갖는다.
크빌은 미국을「우리(프랑스)보다 백배나 행복한」경이의 신천지로 궁금해하고 있었다.귀족주의적인 舊體制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던 유럽 대륙과는 판이한 民主主義를 실현하고 있는 미국을그는 당시의 西歐가 지향해야 할 필연적 모범으로 직관하고 있었다. 토크빌은 귀족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世紀의 필연」이라고 생각했다.나아가 그는 그 민주주의가 도덕과 질서의 사회(『민주적 자유』)와 무질서와 타락의 사회(『민주적 독재』)라는 두가지의 상반된 가능성에 다 열려 있다고 내다보았다.바로 이것이 이 大著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그가『민주적 공화정』이라고부른「대의민주주의」는 요즘 말로 하면 정치적 민주주의를 뜻하는것이었고,따라서 경제적 민주주의라든가 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인식은 전무하였거나 빈약한 것이 었는데 어쨌든 그는 민주주의의 도래를 복합감정적으로 예견하였던 것이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요체를 자유라고 보았다.『자유야말로 나의정열의 최선두에 있는 가치』라고 믿었던 그는 자유란『神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구속을 받지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강조하면서『無限권력은 그 자체가 죄악』이라고 보았다.그것은적극적이라기 보다는 소극적인 자유인 셈인데 이는 그의 동시대 자유주의자들의 공통된 관념이기도 했다.그런데 민주주의의 최대난점은 자유의 신장이 결국 자유의 파괴를 수반한다는 것이었다.루소가『자유란 먹기는 쉽지만 소화하 기는 어려운 음식』이라고 했던 말을 토크빌 역시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평등 또한 민주주의사회의 주요 덕목이라는 토크빌은 민주주의적제도와 실천을 통해 사람들이 강렬한 평등주의적 열망을 갖게 됨에 따라 사회는 필연적으로 급격한 평등화의 길을 걷게 된다고 전망했다.정치적 公民權이 부여되는「자유속의 평등 」이 아닌 사회적 諸條件의 평등까지를 시민들이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권력의집중화를 초래하면서 마침내「노예속의 평등」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다.그럴 때 민주주의 최고덕목인 자유는 민주주의 그 자체의 진행 결과 그 존립이 부정당하게 되는 딜레마에 처한다는 것이다.개인적 자유에 대한 열렬한 승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자유에 대한 모호함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토크빌은 생각한다.평등에 대한 애착과 자유에 대한 열의 사이의 긴장에 따 른 불일치를 그는 가장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험요인으로 지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토크빌은 대체로 다음 두가지의 치료책을 제시한다.하나는 법의 지배다.「正義의 규범」의 근사치인 법을 종교적 習俗과 조화시켜 절도있게사용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다른 하나는 주민의정치참여 확대다.분권화되고 다원화된 각 지방정부야말로「자유의 학교」로서 봉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편 토크빌은 산업화에 의해 근대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지만 바로 그 산업화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산업화에 의한 산업력의 집중이 민주주의의 고전적인 원칙을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형태의 독재 또는 권위주의의 대두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또한 산업화에 의한 개인주의의 이기주의화에 따라 사람들이 정치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차츰 덜 보이면 그것이 소수의 전횡을 위한 좋은 먹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 제로 그는 산업화의 지속적인 진전으로 정부권력의 확대를 초래하고 이것이 근대민주주의의 根幹인 동등한 정치적 기본권을 심각히 위축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민주주의』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그 어느편의 이념적 경향도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그는 그 어느쪽도 아니었거나 그 모든 쪽에 다 속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사실 그는 그 어느쪽도 아니라고 얘기한바 있다).그가 당 시의 대중민주주의 속에서「민주적 독재」라는 다수의 횡포 위험성을 제기한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수적인 사고라 할 수 있지만 대혁명 이후의 대파란들을 겪으면서 개개인의 자유에 지극히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 자유주의자에게서는 간 단히 발견될 수 있는 성향의 片鱗이었다.
토크빌은 미국민주주의의 비결을 시민사회의「뛰어난 제휴의 기술」에 있다고 한다.서로 다른 私益관계에 따른 갈등의 소지를 宗敎에 힘입어 公益과 모순되지 않는「이익 공동체」의 개념으로 제거하는 한편 다양한 의사소통과 토론과정을 개방하는 제도화를 통해 이를 보장하고 있는데 미국민주주의의 건전함이 있다는 것이었다.그렇지만 그와 같은 미국민주주의조차 시민들이 세속적인 이익추구에 탐닉하면서「진지한 철학적 반성」을 게을리해 마침내 도덕적 공민의식이 下向된 衆民의 지배로 전락해버릴 위기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예언자적 충고를 그는 빠뜨리지 않았다.이것은 최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미국정신의 廢止』에서 앨런 블룸이 미국을「더이상 哲學的 疑問을 갖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개탄했던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무엇보다 近代人 최초의 정치실험장인 미국에 관한 가장 본격적이고 방대한 敎習書라는 데 있다.항상 가장 먼저,가장 크게 외치는 것은 가장 오랜 反響을 남긴다.또 하나는 토크빌의 이 걸작이 장대할 뿐만 아니라 靈感과혜안으로 가득찬 經典과 같은 위엄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산업화와 물질화가 가져오는 민주주의에 대한 역기능의 경고라든지,중앙집권화된 정부권력의 독재화경향,자유와 평등사이의 수수께끼같은긴장과 불화에 대한 통찰은 오늘날 에도 여전히 우리의 경청을 요하는 것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그당시 아직도 위험시되고 백안시되고 있던 민주주의를 인간의 보편적인 정치양식으로확신하였던 토크빌의 선견지명에 있다.민주주의란 사랑과 마찬가지로 「역시 좋은 것」이다.
황 주 홍〈亞太평화재단 선임연구원.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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