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오케스트라 "음악소리 줄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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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21일 뉴욕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홀에 들어선 관객들은 무대 위의 낯선 장치를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타악기.금관악기 주자 주변이 플라스틱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유리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고 무대에 선 런던 심포니의 '소음팀'이 해외 공연에까지 들고 다니는 '투명 방음벽'이었다. 금관악기와 타악기 앞에 앉은 목관악기 주자와 비올라 연주자의 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유럽 오케스트라들이 '소음'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작업장의 최대 소음도를 현행 90dB에서 85dB로 내리는 유럽연합(EU) 규약이 2006년 2월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규약이 오케스트라 단원에게도 적용된다는 데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포르테를 연주할 때 느끼는 소음도는 98dB. 레퍼토리에 따라서는 1백40dB까지 올라간다.

영국 오케스트라 협회의 연구 보고서는 "오케스트라 소음은 청각 상실, 음정 불안, 이명(耳鳴.귀울림)현상과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브루크너.말러 교향곡은 물론 베르디의 '레퀴엠', 베를리오즈의 '테데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등 대편성 관현악에서 소음 피해는 더 심각하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해야 하는 오페라.발레 오케스트라는 만성적인 직업병을 호소하고 있다.

BBC 교향악단은 단원들에게 1백50파운드(약 32만원)짜리 귀마개를 지급했다. 하지만 귀마개는 정작 앙상블을 위해 들어야 하는 고음역의 소리까지 차단하는 단점이 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노동자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소음'이 클수록 청중의 감동도 커진다는 사실에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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