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반세기만의 정상대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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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반세기 우리 민족을 불안속에 얽매어 왔던 남북한 사이의 반목과 부신을 씻어 낼 수 있는 최대의 기회가 마련됐다.남북 정상이 7월25일부터 평양에서 회담을 갖기로 함으로써 화해와 공존 분위기 보다는 대결과 긴장으로 점철되어 온 한반도 정세는 대전환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계기를 살려 민족이 공영의 길로 들어서는,민족사에 남을 역사적인 만남이 될지 여부는 회담을 준비하는 남북한의 당국자들과 두 정상이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특히 북한이 진정으로 화해와 단합을 지향하여 공존을 통한 평화통일의 바탕을 마련할 의사가 있는지,체제강화나 위기모면을 위한 정략·전술적인 의도에서 나온 일시적인 화해 제스처인지에 따라 회담의 성패가 가름될 것이다.
최근 팽팽한 긴장상태만 지속되어 온 가운데 대화통로 하나 없는 상황에서 이런 기회가 마련된 것은 좋은 일이다.다만 우리로선 분단 50년만에 처음 맞는 이같은 역사적인 계기를 두고서도 환호작약할 수만은 없어 안타깝다.북한측이 종래처럼 전제조건을 붙이지 않고 회담을 성사시키긴 했지만 꺼림칙한 불씨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2차회담의 장소와 시기 확정을 미루고,회담분위기조성과 관련된 문구를 합의서에 명기하도록 한 점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상간의 만남에서 교환방문이라는 상호주의 원칙은 외교적인 관행이기도 하려니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기도 하다.북한이 굳이 이러한 원칙을 외면하려 한 의도에 대해 우리로서는 철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우리 정부가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북한측의 요구에 순응해 상당한 양보를 한 것은 남한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기 때문에,또 김일성 북한주석을 만나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한과 합의했던 일이 지켜지지 않았던 경험으로 미루어 그렇게 낙관만 할 일이 아니다.7·4공동성명에서부터 남북한 기본합의서,비핵화선언의 경우를 잊어서는 안된다.따라서 정부로서는 평양회담에서 결정하기로 한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지지않을 경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준비해야 할 짐을 떠안게 됐다.
평양회담에서 최우선적인 과제는 물론 북핵문제 논의이고,그 투명성 보장에 진전을 이룩하는 일이다.그 다음 평화통일방안·경협문제·이산가족 문제 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로서는 한차례 만남에서 이런 문제가 모두 풀릴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다만 또 만나서 하나 하나 풀어나갈 신뢰의 바탕만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우리 민족은 20세기 문턱에서 열강의 각축 속에 좌절했던 구한말시대와 달리 21세기를 맞으며 대도약의 기회를 잡을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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