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훌륭하신 네 아버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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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시험기간이라 고등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둘째 녀석의 표정이 유난히 밝은데다 책상을 정리하는등 공부에 대한 각오가 새로운 듯하여 여느 부모처럼 『너 시험 잘 봤구나』하고 물었다.그랬더니겨우 그런거나 묻느냐는 표정이다.
그래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되물었더니 선생님 한 분이 『너희 아버님 훌륭한 분이시라더라.네가 공부 잘 해야 네 아버님과 술 한 잔 기분 좋게 나눌수 있지』하시더라는 것이다.
누군지 몰라도 우리 애에 대한 큰 격려로서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지역사회에서 살다 보니 연줄연줄 얽히기도 하고 또작은 소문도 잘 전해져 평판이 되는 걸 새삼 느끼며 한편 애 키우는 부모로서 각별 언행을 조심해야겠다는 두려 움마저 든다.
자식 둔 부모들 치고 이런저런 일로 속 썩는 사람이 적지 않은 터인데 무엇보다 자신들의 모습이 자식들에게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性徹스님 같으신 분도 중생을 기망하며 어지럽게 살다 간다고 열반송에서 읊으셨는데 실로 부끄럽지 않게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그러나 커가면서 나름대로 비판적 안목을 갖는 자식들에게 내가물려줄 것이 무엇인가 자문해 볼 때 적어도 재산 이나 권력은 아니라는 확신이 선다.
그래서 근래 우리 부부는 그저 자연 속에서 욕심 적게 갖고 죄짓지 말고 건강이나 잘 돌보며 적게라도 남을 돕자는 이야기를자주 나누게 된다.
어떻든 내가 자식들에게 남겨줄 게 「너희 부모 좋은 사람이었어」라는 주변으로부터의 참 평가 말고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고 나의 자식들은 그런 바탕 위에 그들의 삶을 엮어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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