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역사앞에서" 原作과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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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4일 KBS-1TV가 6.25특집극으로 방송한『역사앞에서』의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원작자 유족으로부터 제기됐다.『역사앞에서』는 6.25당시 서울대교수였던 김성칠씨가 쓴 동명의 일기집을 극화한 것.김씨의 3남 기협씨 (45.前계명대교수.제주도남제주군)는 방송직후 본사에 서한을 보내 과장된연출로 원작과 어긋난 부분을 지적했다.기협씨의 주장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註] KBS는 지난 2월 아버님 일기『역사앞에서』극화를 제의하며 상투적인 반공드라마를 벗어나 원작에 충실하게 6.25를 그리겠다고 밝혔다.과연 24일 방송된 드라마는 원작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려 애쓴 것이 역력해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나 한두가지 원작과의 차이점 때문에 시청자에게 원작자의뜻과 당시의 시대상이 잘못 전달될 우려가 있어 이를 지적코자 한다. 첫째,일기에서는 작가가 전해들은 소문으로 묘사된 참상들이 드라마에서는 마치 작가가 직접 목격한 사건처럼 그려졌다.인민재판과 즉결처형,피난열차위에서 갓난 아기를 내던지는 장면등이다.어차피 사실이라면 전해들은 것이든,목격한 것이든 마 찬가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그러나 당시 시대상을 후세에 전하는데는 큰 차이가 있다.소문을 듣고 썼다면 그런 참상은 전쟁중에도 이례적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소문거리가 된 것으로 이해할 수있다.그러나 전쟁의 한 모퉁이에서 숨어살듯 지내던 기록자가 직접 목격할 정도였다면 그런 참상은 언제 어디서나 다반사로 일어났다는 인상을 준다.
둘째는 의용군지원 장면이다.서울문리대 교수들이 인민군의 지원종용에 미약한 항거를 하다 끝내 손도장을 찍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원작은 지원여부를 직설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전후 맥락을 보면 지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끝내 지원하 지 않은 사람이 둘 뿐이었다고 했고,바로 뒤에 교원심사에서 탈락해 학교에서 쫓겨난 일이 적혀 있다.이는 인공치하 서울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다.교원심사를 빌미로 강압적 분위기를 만든 것은 사실이나 마지막 항의자까지도 서명하지 않을 수 없던 분위기는 아니었다.
허울만의 지원쇼를 벌이기보다 교원의 본분을 지키고자 고집을 관철한 분들이 있었던 것이다.그중 한사람인 원작자는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지만 그 직후 다른 학교의 취업권유를 사양하는 대목을 보면 人共의 장래에 환멸을 느끼고 국군의 서울 수복에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인공치하 지식인이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라 이만한 선택의 폭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상황 파악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김기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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