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어떻게 될까/결렬땐 모두 부담 「일부 합의」낙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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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측 “일괄타결”주장이 첫 고비/미신고시설 사찰 첨예한 대립/경수로 지원 소극적일땐 파국
북한과 미국이 다음달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3단계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사실상 합의함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제기될 양측의제들과 논쟁의 대상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양측의 ▲안보 ▲정치 ▲경제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제네바회담에서 제기될 의제들은 안보부문에서 ▲북한의핵확산금지조약(NPT)완전복귀 ▲영변원자로에서 인출한 사용핵연료봉에 대한 재처리중단 ▲핵연료봉 재장전 중지 ▲미신고 2개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로 대변되는 북한핵개발과거역사 규명문제등 핵관련 제반문제와 ▲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휴전선 집중배치 완화 ▲상호 감군등 남북한 군사력균형 ▲주한미군 철수 ▲군사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북한의 미사일개발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부문에서는 ▲북한―미 외교관계개선 ▲실종미군 공동조사 ▲남북한정상회담 ▲한반도비핵화 남북한협정 이행 ▲북한인권 ▲북한의 테러지원 ▲남북한 및 북한―미 상호비방금지 ▲문화·학술·스포츠교류 강화등이 주요 항목으로 보인다.
○대부분 타결난망
경제부문에서는 ▲IAEA의 대북한 핵기술지원 재개 ▲유엔의 북한경제특구 개발지원 ▲북한―미 무역기회 개방 ▲미국의 대북한 경화결제통제 해제 ▲경수로 건설지원과 관련한 국제여건 마련 ▲남북한 직접교역에 대한 미국의 비공식 억제정책 해제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각 안건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타결이 쉽지 않은 사안들이라는 것이 한국과 미국의 견해다.
이들 안건보다 먼저 제기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북한측의 제반안건 일괄타결 주장이다.회담이 열리는 즉시 북한이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 접근방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미국이 일괄타결에 쉽게 응하지 않을 전망이고 북한은 이를 고수할 가능성이 커 회담 벽두부터 설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괄타결 주장이 논의에서 뒤로 밀려나더라도 다른 문제들 역시해결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김일성주석이 이미 약속한 영변원자로 핵연료봉의 재처리 중단과 새 핵연료봉 장전중지등은 쉽게 타결될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미신고 2개 시설에 대 한 IAEA특별사찰은 북한이 군사시설임을 이유로 거부할 가능성이 커 핵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 대상이 될 전망이다.
군사안보부문에서 북한군사력의 휴전선 집중배치 완화와 북한 미사일개발 및 핵기술의 대외판매등은 협의대상 자체가 불투명해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고 미국은이를 거부할 것으로 보여 타결 전망이 별로 없는 사안이다.군사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계속해온 북한은 이번에도 이 안건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이 문제는 3단계회담의 안건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문제를 북한―미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큰데,한국은 군사정전협정은 북한―미간의 협정이 아니라 북한과 유엔간 협정이기 때문에 수교가 이루어진 뒤 유엔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북한―미 수 교와 평화협정대체문제는 별개라는 주장을 펴면서 미국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부문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수교원칙에 합의하더라도 정전협정 문제와 북한내 인권문제가 장애요인이 될 전망이다.
정전협정이 유엔의 문제라면 인권은 미의회내에서 강력히 요구할내용이기 때문에 미정부는 이를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인권도 장애요소
한반도비핵화협정 이행은 양측이 모두 이미 합의한 바 있어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문제합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남북한정상회담이 성과가 없을 경우 역시 설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종미군문제등 기타 안건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나아가 선언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양측이 쉽게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문에서 IAEA의 대북한 핵기술 지원중단은 북한이 IAEA가 요구하는 조건을 수락하면 쉽게 해결될 전망이며 경수로 건설 지원문제와 미국의 남북한직접교역 억제등을 제외한 다른 안건들도 비교적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한 직접교역 허용은 미국내 수출업자들의 반발이 예상돼 미국이 실질적 양보를 하지 않을 전망이다.김일성주석이 요구한 경수로 건설지원 국제여건 마련은 경수로 기당 건설비가 10억달러에 달해 원칙적 합의는 이루어질 수 있으나 실질적 이행에서 북한측이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많다.
북한측은 「경수로건설지원 계약서만 체결되면 핵개발을 동결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만큼 경수로 건설문제에서 계약단계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많아 미국이 미국내법등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일 경우 회담결렬의 주요사유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직접적 경수로 기술·자금지원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스위스은행등을 통해 국제컨소시엄을 구성,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돼 계약이 단시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여러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은 회담결렬보다는 원칙적 차원에서라도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소식통의 전망이다.
○한국소외 가능성
미국은 북한이 회담결렬과 핵개발동결 취소를 선언할 경우 다시 북한핵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가 오는 11월의 미국내 총선을 앞두고 클린턴정부가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게 돼 가능하면 타결에 초점을 맞추고 회담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이익이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북한측도 회담이 결렬되면 미국이 즉각적으로 유엔안보리에서 대북한제재로 선회,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역시 결렬은 원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제네바의 북한―미 3단계 고위급회담은 상징적 또는 원칙적 수준에서 타결될 전망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제네바회담이 약 2주간의 회의를 마치고 타결될 경우 나머지 실무문제는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양측 실무회의나 4단계 고위급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제반 안건들이 타협의 소지가 작은 난제들이기 때문에 회담 자체는 물론 논의 역시 장시간걸릴 것으로 보여 몇달간에 걸친 설전과 타협이 엇갈리는 지지부진한 협상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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