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프리즘] 시민이 경찰을 유능하게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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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12면

미국의 한 도시에서 경찰의 순찰활동이 범죄를 줄일 수 있는지를 놓고 실험을 했다. 경찰서 관할구역 안에서 사회경제적 특징, 범죄율, 인구 등이 비슷한 세 지역을 선정했다. 그 뒤 1년 동안 A지역은 순찰을 2배로 늘리고, B지역은 아예 순찰을 하지 않았다. C지역은 이전과 같은 횟수로 순찰을 했다. 경찰관이 많이 투입된 A지역의 범죄가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범죄발생 빈도에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세 지역의 시민들은 순찰량의 변화도 모르고 있었다. 시민과 유리(遊離)된 경찰만의 노력으로는 범죄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의 경찰백서에 따르면 경찰관은 2004년 9만3271명에서 2006년 9만5613명으로 증가했다. 이 중 수사인력은 1만6759명에서 1만8378명으로 늘었다. 수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5대 주요 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는 2004년 45만5000여 건에서 2006년 48만9000여 건으로 늘었다. 더욱이 검거율은 2002년 84.2%에서 72.3%로 떨어졌다. 범죄 4건당 1건 정도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특히 절도 검거율은 2002년 70%를 넘었으나 42.8%로 뚝 떨어졌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는 범죄수사의 성공 여부가 경찰의 인력증가나 역량, 노력보다는 피해자·목격자·제보자 등 시민이 얼마나 범죄 관련 정보를 경찰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하느냐에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다시 말해 범죄예방 및 범인검거의 성패를 시민이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이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경찰과 시민이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면 경찰은 무능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112 신고가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다수의 내용은 범죄와 상관이 없는 생활민원이다. 예를 들면 “개 짖는 소리에 잠을 못 자겠다. 개 좀 잡아가라” “아래층의 소음문제를 해결해 달라” “아이가 말을 안 들으니 와서 혼내달라” 등이다. 많은 시민이 경찰을 찾는 이유가 이처럼 사소한 데 있다. 그런데 경찰은 치안력 확보를 이유로 이런 전화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질구레한 일에 손을 빼앗기면 정작 범죄 예방이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효율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해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시민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경찰이 시민의 눈높이에 있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의 경찰은 시민이 신뢰와 친근감을 갖고 다가가기에 너무 멀리 있다.

경찰 역량을 회복하기 위해 시급한 것은 시민과 항상 함께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경찰 혼자서 무엇인가 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관할지역의 시민이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경찰관의 업무 평정도 상급자보다는 시민의 몫이 커야 한다.

범죄가 발생한 뒤 이를 해결하는 수동적 역할에서 비범죄성 생활민원을 중시하는 적극적 서비스 제공자로 바뀌어야 한다. 경찰과 시민이 함께하는 ‘치안재의 공동생산(co-production of public safety)’이 경찰을 유능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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