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모습보인 김성애/김일성 두번째부인…73년 김정일에 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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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일성주석의 부인 김성애(71)의 등장은 뜻밖의 일이다.
김성애는 70년대 중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캄보디아의 시아누크등 김일성과 각별한 관계를 맺어온 외국수반들을 만났을때 얼굴을 비친 뒤로 지난 20여년간 「잊혀진 여자」로 치부돼왔는데 이번에 나타난 것이다.
김일성이 이번에 카터를 얼마나 환대했는가를 단적으로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북한의 「황후」김성애가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것은 74년6월,이른바「평양시당 전원회의」사건 이후의 일이다.71년 김성애가 여맹위원장으로 부상,막강한 권력을 휘두르자 73년9월 김정일측에서는 계모인 김성애의 존재가 김정일 후계체제에 걸 림돌로 작용한다고 보고 그녀와 측근의 월권행위·전횡을 내사해 이 회의에서 김성애 세력을 집중 비판했다.
이 회의에서 당시 해군사령부 정치위원이던 김성애의 친동생 김성갑(전 평양시 인민위원장)등의 월권행위가 심각한 비판을 받았고 김일성은 마침내 김성애에게 「근신」처분을 내렸다.내부권력 투쟁에서 김정일에게 밀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등장은 김정일과 이른바 「곁가지 무리」들의 갈등때문에 시름을 앓는 김일성을 안심시키기 위해 김정일이 카터 방북을 계기로 김성애측근에 관대한 자세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그만큼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탄탄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성애는 김일성의 두번째 부인이다.
첫 부인 김정숙은 항일빨치산 시절 김일성을 만나 결혼해 오늘날 김일성의 후계자인 김정일을 낳고 소련원동군 사령부 산하의 88특별여단(브야츠크)에서 생활하다 해방후 귀국했으나 49년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
김성애가 김일성을 처음 만난 시기를 놓고는 증언들이 엇갈린다.
김정숙이 살아있을 때도 김일성이 김성애를 알고 지냈다는 설이 있다.또 한국전 당시 지하벙커로 옮겨다니던 최고사령부에서 배치돼 김일성의 기록담당비서로 일하면서 갑작스럽게 가까웠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56년 김일성과 결혼할 무렵 김성애는 어느 도의 여맹간부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김일성과 김성애간의 금슬은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김정일 후계체제와 관련,김성애의 자녀(평일·영일·경진등 2남1녀)들이「곁가지」(의붓자식의 북한식 표현)로 취급받고 서러움을 당하면서 김성애는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한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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