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배세력 바꾸려고 수도 옮긴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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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이 그저께 대전에서 발언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견해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 발언을 들여다보면 盧대통령은 '행정수도의 지방 이전'이 아닌 '천도(遷都)'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 목적도 '지방화.분권화 촉진'이 아니라 '지배세력의 교체'였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정수도 이전이란 표현은 서울 이전에 따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도대체 "수도 이전은 한 시대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盧대통령의 발언에서 그 내심을 읽을 수 있다. 그는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현재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구세력의 뿌리'이며, 새 지배세력은 서울을 다른 곳으로 옮겨 새 기반을 만들겠다고 하는 셈이다.

이런 발언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천도관은 정변이나 혁명을 통해 새 왕조가 들어섰던 전제군주 시대에나 가능한 얘기다. 우리가 지금 고려나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새 지배세력은 또 누구인가. 盧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현 집권세력 아닌가. 그들이 새로운 곳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수백조원이 들어가는 수도 이전을 마구 밀어붙여도 되는 것인가. 무엇을 하자는 새 지배세력인가. 누구를 지배하겠다는 건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盧대통령은 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변화를 국민이 선택했다"고 했는데 이 또한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해서 국민이 수백, 수천 가지의 대선공약 전체를 지지했다고 주장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국가의 장래와 명운이 걸린 중대사라면 국민적 합의와 검증절차를 거쳐야 마땅하다.

김수환 추기경의 지적처럼 수도 이전은 통일과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해야 한다. 총선 전략이나 지배세력 교체와 같은 정략적 목적에 의해 추진돼선 결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