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외무역공사 서울지사장 페데리코 발마스씨(외국인이 본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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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획일적 문화 산업탄력성 “발목”/소비자 다양한 욕구 적어 기업 신제품 개발 소홀/“전쟁억지력 충분 북도발 못할 것”
경제가 발전해야 문화가 피어난다고 하지만 거꾸로 문화가 경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토양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탈리아 해외무역공사(ICE)의 페데레코 발마스 서울시자상(44)은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를 비교하면서 그것이 산업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한다.
『이탈리아인은 개성이 강합니다.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나도 저런 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대신 「저것과는 다른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때문에 수요는 다양화·세분화돼 왔습니다. 생산자도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구미를 맞추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를 「탄력적인 생산」이라고 불렀다. 수요의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 즉각 대응하는 생산체제라는 뜻이다. 섬유·피혁 등 이탈리아의 경공업이 세계를 주름잡는 것도 따지고 문화적 토양에서 나왔다는 말이 실감난다.
반면 한국에서는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문화 때문에 개인의 창의력이 약화되고 산업의 탄력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그는 발견했다. 또 그는 이같은 문화의 뿌리를 유교에서 찾는다.
『한국은 유난히 유교문화가 강합니다. 유교는 규율과 단결을 강조하는 반면 개인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70년대의 양적 성장시대때 제너럴 박(고 박정희대통령)이 국민을 총화단결로 몰아가는데에는 유교문화가 주효했었지요. 그러나 국제화시대에는 오히려 경제의 역동성과 개방성을 제한하는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획일성의 단적인 예로 승용차의 색을 들었다. 『요즘에 와서야 일부 밝은 색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도 대체적으로는 남의 눈에 튀지 않으려는 태도가 느껴집니다.』
어느분야나 마찬가지로 수요가 다양하지 못해 생산도 물량위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의 개성적인 요구가 없으니 기업들도 아이디어 개발에 결사적으로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발마스 지사장의 눈에 비친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최근 그는 북핵문제에 대해 본국으로부터 문의를 많이 받는데 항상 『미군의 억지력이 충분하고 북한도 이를 알고 있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해준다고 한다. 로마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발마스 지사장은 싱가포르에서 4년,한국에서 3년 근무하면서 아시아를 두루 여행했다. 한자를 술술 해독할 정도로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다.<남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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