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바둑칼럼>돌부처 이창호의 실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高手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劉昌赫6단은 정면에서 오고 曺薰鉉9단은 측면에서 온다.장검을들고 척 진로를 가로막으며 나타나는 劉昌赫의 바둑엔 광채와 호연지기가 서려 있다.소매속의 단창으로 전류처럼 허리를 찔러가는曺薰鉉의 바둑에선 선홍빛 감각이 꽃잎처럼 흩날 린다.
趙治勳9단은 단도를 입에 물고 불굴의 의지로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고,北方으로 밀려난 徐奉洙9단은 황야를 전전하며 언제 또만리장성을 넘을까 야심을 키운다.때로는 「내 運이 살아있나」점괘를 굴리다가 껄껄 웃는다.
李昌鎬6단은 이들 4인을 제압해왔으나 여전히 그의 모습은 안개속에 있다.
李昌鎬는 안개다.안개속에서 슬그머니 뻗어나오는 정확한 손이다.그는 어떤 무기도 지니지 않은듯 보인다.그는 광채도 없고 색깔도 없다.바둑에서 나타나는 온갖 기교와 바둑에 던져지는 온갖수사들이 그의 손에 의해 평면화된다.단순화되고 계산화된다.
그러나 李昌鎬는 누구보다 新手를 많이 만들어낸 사람이다.新手는 모험을 의미하며 통찰력을 의미한다.李昌鎬의 밋밋한 평면속에숨은 또하나의 눈(眼).그 눈의 정체는 무엇일까.高手들은 자신들의 뱃속까지 환하게 쳐다보고 있는듯한 李昌鎬의 눈을 의식하고가끔 전율을 느끼곤 한다.
李昌鎬는 불과 18세.그가 완벽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할 때마다 기존의 바둑관과 바둑철학들은 신념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李昌鎬6단이 王位戰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바둑동네는 지금 이상한 흥분에 들떠 있다.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李昌鎬라는 사람에게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대착각이 일어났기에 화제가 만발하고 있다.
위 그림이 바로 王位戰도전기 제6국인데 黑을 쥔 李昌鎬는 자신의 전공인 死活을 착각하여 상변 대마를 죽이고 말았다.黑2는실수였고 劉昌赫의 白9는 폐부를 찌르는 묘수였다.
黑이 약간 우세했으니 이판을 李6단이 이기면 도전기는 3대3.그리하여 제7국이 결승전이 된다면 추격해온 李昌鎬쪽이 심리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때 黑2의 실착이 등장했다.이 한수로 王位타이틀은 물론 천하통일의 위업도 물거품이 됐다.
이 불가사의한 실족을 놓고 李昌鎬도 조금 지쳤을 거라는 얘기가 많았다.다른 한쪽에선『이 실수야말로 李昌鎬가 승부기계가 아님을 증명한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심사는 李昌鎬가 패배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왜 자꾸만 그에게 패배를 가르쳐주고 싶어서 안달일까.
劉昌赫은 월간『바둑』이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연 3개월째 1위를 달리고 있고,李昌鎬는 빙긋이 웃으며 여전히 안개속에 서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