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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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더 먼 곳을 향하여(51)여자 팔자가 아무리 더러워도 신발하고 사내는 있다지만,남자라고 뭐 빈 집이라던가.남자가 아무리 가난해도 계집과 탕반은 있다고 했다.저기라니? 화순이가 가리키는 쪽,어둠과 불빛이 뒤엉켜 빛나고 있는 아파트 숲을 길남은 바라보았다.
일본사람들만의 동네,결혼해서 자식 기르며 사는 사람들의 동네,저녁이면 생선 굽는 비린내도 풍기고 애들 우는 소리도 들리면서 치마 두른 사람들이 오가는 동네… 길남은 어둠 속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어디서 눈 먼 왜놈 하나 물어서 사는 여잔가 보다.그거야 모르지,왜놈이 눈이 멀었는지,조선년이 밸이 빠졌는지.모르면 모르는대로 그러면 어떻고 이러면 어때.세상이 이런데제 살 궁리해서 살면 되는거지.길남이 물었다.
『저기가 어딘데요?』 『몰랐어? 술 있고 여자 있고 화투 있고….』 화순의 말이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길남이 놀란다.들은적은 있었다.명국이도 그말은 했었다.저어기 극장 위쪽으로 유곽이 있단다.웃기는 이놈아.네가 뭘 안다고 웃니.
『그럼,거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서 있던 화순이 길게 늘어진 옷소매에서 담배를 꺼내들며 물었다.
『담배,줄까?』 『못 배웠습니다.』 『잘 했네.뭐,나처럼 속푹푹 썩는 년이나 태우는게 담배지,앞길이 구만리 같은 총각인데….』 중얼거리면서 화순이는 네모진 시멘트 더미에 걸터앉았다.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길남은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이 하얀 담배가치인걸 보며 마음속으로 놀란다. 술 팔며 남자들 노리개 되고,그러다가 몸도 팔텐데,그러니 담배라도 좋은걸 피우는 건가 싶다.
『세상이 어디 하루 밥 세끼 먹는다고 다 똑같은 줄 알아? 누구는 식칼도 되고 도마도 되지만 그 위에 얹히는 고기,누군 그게 되고 싶어서 되겠어.』 무슨 뜻에서 하는 말인지 몰라하며길남은 눈을 껌벅였다.그녀가 피우는 담배 불빛이 바알갛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곤 한다.말할 때 이따금 술냄새가 풍기는것 같아서 이상하다 생각하기는 했었지만,이런 여자가 어쩌자구 여기까지■서 그런 험한 데 빠져 있는건지,갑자기 길남은 마음 한쪽에서안타까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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