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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로 돈 셀 정도면 내 것이란 생각을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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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서울에서 경부고속국도를 타고 오다 천안~논산고속국도로 빠져나오세요. 운치가 좋은 곳이니 여유 있게 오세요.”

충남 연기군 전동면 송성(松城)의 송파랜드. 느티나무·벚나무를 비롯해 산달나무·독일가문비·백철 등 ‘엄청난’ 나무가 즐비하다. 종류만 2000여 종, 숫자론 2만3000그루가 넘는다. 세월로는 한해살이 들꽃부터 800년살이 향나무를 망라한다. 대나무를 분재한 관음죽, 오엽송은 국보급이라고 한다. 39만7000㎡(약 12만 평)의 수목원 안에 꽃과 나무들이 군대 사열하듯 반듯하게 도열해 있는 것이 장관이다. 그 다음엔 수목원 한쪽에 반달곰, 꽃사슴, 엘크, 비단잉어 사육장이 눈길을 끈다. 꽃사슴만 200마리가 넘고 뿔이 왕관 같기로 유명한 엘크는 국내에서 처음 사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신없이 사는 직장인이나 40대가 넘는 사람이라면 한적한 시골 전원주택 등에서 꽃과 나무, 동물 들과 함께 살고 싶은 꿈을 꾸게 마련이다. 송파랜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상향으로 비춰졌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이재연(76) 전 LG그룹 부회장(송파랜드 회장). 그는 우리 나이로 희수(喜壽·77세)다. “어서 오시오” 하면서 오른손을 꾹 잡는 것이, 조금 과장해 40대의 기운이었다. 젊어 보인다는 인사를 먼저 건넸다. 그랬더니 지금도 골프를 치면 드라이버는 220야드가 기본, 지난해엔 에이지 슈팅(골퍼가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적은 스코어를 올리는 것)을 두 번이나 했다고 했다. 고교 시절엔 장안의 럭비대회를 4연패한 ‘날쌘돌이’였다고도 했다. 꼬박 3시간을 인터뷰했는데 목소리가 내내 쩌렁 울린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청바지 입고 호미 잡는 게 일이에요. 영화 보고 공연 가는 대신에 빅토리아 수련 다듬고 멕시코 사보텐(선인장)에 물 주는 일에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늙는 것, 아픈 것을 잊었습니다.”

이 회장이 꽃과 나무 가꾸기에 흠뻑 빠져든 것은 1963년. 햇수로는 45년이나 됐다. 처음엔 경기도 의왕에서 작은 농장을 시작했다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당시 이삿짐이 트럭으로 1000여 대나 됐다고 하니, 수목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웃한 천안에서 농장을 하는 구자경(82) LG그룹 명예회장이 라이벌(?)이다. 구 명예회장이 밀짚모자 차림으로 나타나 “도저히 이 회장의 솜씨는 못 당하겠다며 감탄할 때도 있었다”고 전한다.

송파랜드의 상징인 소나무.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정원수로 쓰고 싶다며 청와대 측에서 수차례나 찾아왔지만 이재연 회장은 “황금덩이를 가져와도 팔 수 없다. 돈은 쉽게 찍어낼 수 있지만 나무는 시간과 정성을 더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 나무를 지켰다. 신동연 기자

재계에서 이 회장은 독특한 인물로 주목받는다. 대림가(家)의 막내동생으로 LG그룹에서 활동한 이력 때문이다. 고(故) 이재형 국회의장과 고 이재준 대림그룹 창업주가 그의 친형이다. 이 회장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차녀인 자혜(70)씨와 결혼한 인연으로 ‘LG 사람’이 됐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그에게 손위 처남이 된다. 연세대 상학과 동문인 구자두(75) LG벤처투자 회장이 이 회장 부부를 연결해줬다고 한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은행 외국부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큰형님(이재형 전 의장)께서 ‘집안에서 정치는 한 사람만 하면 된다’며 만류하시더군요. 그러다가 회장님(구인회 창업회장)의 부름을 받았지요.”

구인회 회장이 대림 측에 “사위를 빌려가겠다”면서 이 회장을 LG로 불러들인 것이 62년. 이후 LG의 창업세대가 동반 퇴진하던 95년까지 LG맨으로 활약했다. 구인회·구자경 회장 부자(父子)가 “저 회사를 재건해야 하오”라고 하면 호랑이처럼 달려가는 것이 이 회장의 역할이었다.

그의 화두는 ‘시장을 만드는’ 공격경영이었다. 이를테면 “시장이 불황이어서 회사가 어려운 게 아니라 시장에 내놓을 히트상품이 없어서 회사가 어렵다”는 논리다. 60년대 후반 럭키(현 LG화학) 상무 시절엔 회사가 자금난을 겪자 인조피혁을 만들어 신(新)시장을 개척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장은 “여기서 노다지를 캐 LG화학이 여천공장을 짓는 모태가 됐다”고 회고했다.

77년 금성통신(현 LG전자) 사장으로 갔을 때는 회사가 희망을 잃어가던 때였다. 특히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전화기가 전환되면서 외국계 기업에 밀려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던 와중에 미국의 바이어가 키폰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날부터 회사에 야전침대를 깔고 합숙을 했지요. 아내도 주말마다 열심히 꼬리곰탕 끓여다 날랐지요.(웃음) 결국 다기능 키폰을 선도적으로 내놓았고 나중엔 공장 빈 터가 (제품을 실어갈) 컨테이너로 꽉 찼어요.”

독립해서도 뉴스메이커가 됐다. LG를 떠나서 이 회장은 장남인 선용(46)씨와 함께 TGI프라이데이라는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를 국내에 선보였다. 지금은 롯데로 넘겼지만 당시 TGIF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단일 매장 세계 최대 매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못내 미련이 남는 일도 있다. 이 회장은 금성통신 사장 시절 고가의 의료장비인 자기공명영상(MRI)장치를 국산화한 주인공. 그런데 단기간에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임 사장이 이 사업을 포기했다. “지금은 지멘스·GE 같은 외국 기업들이 MRI 시장에서 득세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대목이지요. 전문경영인들은 돌다리를 세 번 두드립니다. 그러다 보면 경쟁회사들은 벌써 강을 건너고 있지요. 감나무 아래서 열매 떨어질 때 기다리면 늦습니다.”

이재연식 ‘창조 경영’은 수목원 경영에서도 변함이 없다. 이 회장은 “정성과 애정만으로 부족하다. 일등이 되려면 극성까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무를 가꾸는 일은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 그리고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해요. 끔찍이 손질을 해줘야 합니다. 때로는 극성까지 약이 됩니다.”

송파랜드가 실제로 그렇다. 극성도 이런 극성이 없을 것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한다는 비단잉어 양식장. 송파랜드에서 나오는 비단잉어는 색상이 좋아 마리당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당연히 국내 최고가라고 말했다.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선 비단잉어 한 마리마다 고유한 이름이 붙어 있다. 이 회장이 ‘고르비’ ‘미스황’이라며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이 회장은 물론 사육사에게도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잉어들은 ‘몸매 관리’를 위해 마취하고 정형수술까지 받는다. 수질관리를 위해 양식장 구석에서 수중펌프를 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공기순환에 좋다는 부레옥잠·귤껍질을 바닥에 깔아놓았다. 한겨울엔 보일러도 가동한다.

“양란의 조직배양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 도쿄대 연구팀을 칠거(七去·일곱 번을 방문)의 예로 찾아간 적도 있습니다. 꽃을 가꾸다가 손가락에 무좀 난 것은 헤아리기도 어렵지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오로지 ‘손으로만’ 관리한다면 믿으시겠어요?”

투자도 많이 했다. 이 회장은 “배당과 월급, 상속받은 재산까지 여윳돈은 몽땅 털어넣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더 아껴 쓰게 되더라는 얘기도 빼먹지 않는다. 이 회장은 주유소에서 사은품으로 준 목장갑을 빨아서 쓰는 억척파. 구자혜 여사 역시 빵집에서 주는 알루미늄 포장지까지 손 다림질을 해서 쓰는 재활용파다. “돈은 계산기 두드릴 정도가 되면 그때부터 자기 돈이 아닙니다. 머리로 셀 만큼만 있으면 됩니다. 순리대로 사는 게 좋아요. 그렇게 살라고 자연이, 자연이 가르칩니다.”

이제 송파(松波)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했다. 문자 그대로 소나무가 파도친다는 뜻이란다. 1970년대 초반의 일이다.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 자리를 내놓은 윤보선씨가 이 회장의 수목원에 들렀다. 윤 전 대통령이 대뜸 “차경이 좋소”라고 칭찬을 하더란다. 차경(借景)이란 ‘빌린 경치’를 일컫는다. 비슷한 시기, 이번엔 권력을 잡은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도 이곳을 찾았다. 그 역시 “차경이 아름답다”는 인사를 하더란다. 권력을 빼앗긴 사람도, 빼앗은 사람도 “차경이 좋다”고 했다. 당시 이 회장의 수목원은 의왕 길가에 있었는데, 그 뒤의 야트막한 소나무산과 잘 어울린다는 의미였다. 세상과 어우러지면서 수목원이 더욱 살아난다는 뜻 아닌가. 그날로 이 회장은 ‘소나무 파도’라는 뜻의 송파를 아호로 정했고, 수목원 이름도 송파랜드로 지었다.
이 회장은 이제 그 소나무 파도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9월 1일 관광농원으로 인가 받으면서 송파랜드는 일반 개방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규모가 커지면서 혼자 보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회에 보답할 차례”라며 “내년부터 송파랜드를 일반인에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WHO

1931년 경기도 시흥 생. 배재고·연세대 상학과를 나와 미국 린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다 장인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권유로 럭키(현 LG) 비서실장으로 옮겨 반도상사(현 LG상사), 한국광업제련(현 LS니꼬동제련) 등에서 근무했다. 희성산업 사장(76년)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금성사·금성통신(현 LG전자)·LG카드 등의 CEO를 지내면서 ‘해결사’로 유명했다. 99년 아시안스타를 세워 국내 최초의 패밀리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를 선보였으며, 지금은 충남 연기군에 있는 송파랜드에서 수목원 경영에 전념하고 있다.

연기=이상재 기자 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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