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A국제도서전참관기>下.낯뜨거운 10大출판국 한국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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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에이전시 H씨와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혹시 연락처를 아는가.』 『약속시간이 몇시간이 지났는데 사람이 오지 않는다.무슨 사고가 난 것인가.한국 부스에 들르면 연락 좀 해달라.』 제48회 ABA(美서적상협회)국제도서전 웨스트홀뒤쪽 구석에 자리잡은 대한출판문화협회 전시대에는 이처럼 불쾌감이 섞인 문의와 당부를 해오는 미국 출판사및 저작권 관계자들의발길이 심심찮게 이어졌다.97년의 시장 전면개방으로 국경없 는전쟁을 치러야할 우리나라 출판.저작권 관계자들의 대응자세가 어떠한가를 한눈에 드러내 보이는 풍경이었다.
특히 ABA도서전에 참가한 대한출판문화협회 주관 한국출판물 전시대는 그 위치와 꾸밈,전시 도서나 안내책자등 모든 분야가 너무 형식적이어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한국의 이미지를 오히려깎아내리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는 평가였다.
출판계에 30여년간 종사해온 C씨(67)는『한국전시대 부스를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 첫인상이었다.우선 초라했다.어느 국제도서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우리 출판문화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줄수 있는 책들도 적지않은데 선별에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참가한 국내 출판사는 독립된 전시대를 마련한 동아출판사와 인쇄소,대한교과서,대한출판문화협회등 3곳이었다.
그중 출협부스는 한국출판계의 대표적인 출판물을 전시하며 알리는 기능보다는 도서전 참관차 온 한국출판인들이 다녀갔다는 얼굴도장을 찍는 연락처로서 더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전시된 도서의 내용이나 출판물의 수준에도 문제가 있었다.한국출판을 알리는 대표적인 홍보물로 배포된『BOOKS FROM KOREA』는 지난해 제작된 93년판 재고목록이었다.전시된 책중에는 미국인 저자의 번역서,같은 분야의 외국도서와 견주어 현저히 질이 떨어지는 기술서등 전시목적이 무엇인지 모를 책들도 포함돼 있었다.「한국방문의 해」라면서 쓸만한 한국문화 소개 책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전시대의 모습도 한국을 알릴수 있는특징이 없고 그나마 제일 외진 곳에 자리잡아 참가 의의를 더욱퇴색시켰다.
그런 점에선 우리와 실정이 비슷하거나 낮은 대만.중남미 출판사들의 전시대가 오히려 나았다는 느낌이다.특히 영국.프랑스등은출판사와 저작권중개회사들이 공동으로 전시대를 운영하고 분야별 저작권중개사의 연락처와 주요 취급분야를 담은 팸 플릿을 배포하는등 준비성을 보였다.
한마디로 세계10대 출판대국을 자처해온 한국출판계가 한국출판물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팸플릿과 선별되지도 않은 출품도서로 준비없이 초라한 전시대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국제화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현실에서 안타까운 일 이었다.
D출판사의 K씨는『국제화시대를 맞아 한국출판계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할 때가 됐다.한국출판문화의 수준을 알릴수 있는 국제경쟁력 있는 출판사들이 저작권에이전시등과 공동으로 전시대를 설치하는등 규모에서부터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을수 있게 적극적인자세로 국제도서전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金龍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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