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북핵 해결 아직 요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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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큰물 피해’를 이유로 8월 말로 예정됐던 남북 정상회담이 10월 초로 연기되더니 급기야 9월 19일로 예정됐던 6자회담이 뜬금없이 연기됐다. 중국의 중유 선적 지연, 북한 핵 시리아 이전 의혹 보도 등이 6자회담 연기에 부분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6자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간 선후관계와 개최 여부를 놓고 ‘전략적 고민’ 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 입장에서 6자회담을 먼저 개최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할 경우 핵 문제를 6자회담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으므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남북경협·평화체제·통일방안 등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큰 행사를 거의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반면 남북 정상회담을 먼저 개최한 뒤 여유를 갖고 6자회담을 할 경우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선언’을 하고 이를 토대로 연말까지 6자회담 안팎에서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대미관계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아예 남북 정상회담 자체를 취소하고 6자회담과 대미관계에 매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하건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북한이 핵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할 것이라는 징후를 아직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중·러 기술진을 영변으로 불러들여 핵 시설을 둘러보게 함으로써 ‘불능화’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하지만 ‘2·13 합의’에 따라 북한이 가진 모든 핵 프로그램, 즉 핵무기·핵물질·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해 ‘철저한 신고(complete declaration)’를 하겠다는 얘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뉴욕타임스의 북한 핵 시리아 반출설 보도에 대해 북한 외무성은 “우리는 책임 있는 핵 보유국으로서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라는 데 대해 엄숙히 천명했고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핵 이전을 자제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던지고 있다. 핵도 갖고 미국과도 잘 지내는 ‘제2의 파키스탄’이 되고 싶은 것이다. 과감히 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개혁의 길로 들어선 리비아의 뒤를 이어 북한이 ‘제2의 리비아’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따라서 한반도가 진정으로 평화에 이르기 위해선 북한 핵 문제를 조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되면 최대의 피해자가 바로 한국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분명하고도 주도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 야심을 꺾는 데 있어 한국과 중국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될 경우 미국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핵 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핵을 인정하고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만을 통제하는 것이다. 대북 군사공격이 여의치 않다는 점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선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중국의 대북 비핵화 의지를 약화시켜야 한다. 북한이 중국의 대북 투자를 수용하고 한국과의 경협 및 평화체제 논의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우리의 대북전략은 평화·번영·통일에 관한 논의가 핵 문제의 중요성을 경감시키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평화는 ‘선언적 평화’가 아닌 ‘선(先) 비핵화 후(後) 평화체제’ 원칙 아래에서 작동되는 ‘실질적 평화’여야 한다. 경협 또한 6자회담을 통해 북한에 제공되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초과하는 지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통일 역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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