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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병원중심 의료체계 갖춰야(특진 중병앓는 의료현장:19·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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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보험적용 늘려서 「사회보장」 본뜻 찾아야/의사 불친절·종합병원 맹신도 개선 필요
「의료가 위기다. 근본부터 개혁해야 한다」. 각계각층에서 「특진,중병앓는 의료현장」의 연재중 공통적으로 지적한 말이다. 시리즈를 끝내며 학계·의료계·소비자측 전문가가 모여 의료위기의 실체와 개혁방안을 논의했다.<편집자주>
□참석자
▲송보경 <「시민의 모임」 부회장·서울여대 교수>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경제학>
▲이상웅 <의학협회 부회장·산부인과 전문의>
▲양봉민교수=내년부터 의료시장 개방이 시작됩니다. 아직은 제도개혁을 통해 우리 의료의 체질을 강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외국 의료가 들어와 휘저으면 그때는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 빨리 의료현장을 왜곡시키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특히 의료보험제도가 문제입니다.
보험 적용이 안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사회보장」이라는 의료보험의 본래 취지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외국 자본은 이런 비보험 분야를 집중 겨냥할 것이 분명합니다.
▲송보경교수=시리즈중에도 강조됐지만 보험혜택 일수를 1년에 1백80일로 제한하는데다 MRI 등 고가 의료장비가 보험에서 제외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혈압과 암 등 만성질환·난치병 환자들이 제대로 혜택을 못받지요.
보험이라는 것이 큰일 당했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인데….
▲이상웅부회장=77년 의료보험이 시작되고 89년부터 전국민으로 확대되면서 감기만 걸려도 대학병원에 가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이런 풍조가 중소병원과 개업의들을 멍들게 하지요. 보험을 확대하며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의보 본인부담 과다
▲양 교수=명색이 의료보험인데 진료비의 본인 부담 비율이 너무 높아요. 평균 40% 이상이고 외래 환자는 60%를 육박합니다. 아마 세계최고 수준일 겁니다.
▲이 부회장=낮은 보험수가가 의사들의 소신 진료를 막는 것도 조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지요.
▲송 교수=보험문제만 나오면 의사단체가 으레 보험수가를 들고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산적한 문제를 뒤로 하고 의료수가만 따진다면 「의료인들이 돈만 안다」는 국민의 질타를 받기 십상이지요.
▲이 부회장=의료수가의 문제점이 사회에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12시간이상 고생해 신생아를 받아봤자 3만2천원(초산분만비) 입니다. 이런 여건이 진료 행위를 크게 비틀어놓고 있지요.
▲송 교수=의사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소비자에게 전가해선 안됩니다.
국내에 제왕절개수술이 많은 이유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 아닙니까.
▲양 교수=우리나라의 제왕절개 비율은 84년 5%에서 93년 20%로 10년 남짓 사이 4배로 늘었습니다. 제왕절개 비율이 높은 미국은 최근 억제정책을 펴 92년 23%에서 지난해 22%로 사상 처음 감소시켰습니다.
▲이 부회장=자녀를 한둘만 낳으면서 제왕절개를 원하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또 산모의 건강과 의료사고의 염려 때문에 난산 조짐이 보이면 제왕절개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양 교수=의료보험조합 운영과 관련,본질 이상으로 커져버린 해묵은 문제가 조합주의와 통합주의 논쟁입니다.
어느 쪽이건 급여나 보험료 등의 조정으로 현행 문제점들을 개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운영체제가 「조합의 관리운영비를 줄일 수 있느냐」로 판가름해야지요.
▲송 교수=전적으로 찬성입니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효율적인 의료서비스를 지원해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요. 조합·통합주의 논의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감도 없지 않습니다.
○의사수 더 늘려야
▲양 교수=이 문제에 대한 보사부의 명백한 입장과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 부담만 고려해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이 부회장=일부에서 의대를 증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당장 일부 중소병원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갑자기 의대를 증설,찍어내듯 의사들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반대입니다. 현재 매년 양의사 2천8백80명,한의사 7백여명이 쏟아져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의사가 크게 남아돌게 됩니다.
▲송 교수=소비자 입장에서는 의사수 동결 주장은 의사단체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봅니다. 의사의 증가는 경쟁체계가 돼 의료서비스 질향상으로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의사가 밀려올텐데 의대동결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양 교수=인구증가율에 비해 의사증가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선진국과 비교해 의사수가 턱없이 모자랍니다. 인력동향 분석을 하면 2010년까지도 의사가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당분간 의사수를 늘려야 합니다.
▲송 교수=의사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 의사들은 너무 불친절해요. 처방전에 모르는 영문으로 휘갈겨 쓴뒤 「약국에 가보라」는 식입니다. 응급환자가 왔는데 달려나가 보는 것이 아니라 진료실로 올라오라고 하는 의사도 있답니다. 이런 것은 의사들의 특권의식 아닙니까.
▲이 부회장=현재 활동 의사가 3만7천5백여명입니다. 그중 간혹 불친절한 의사도 있을 것입니다. 종합병원에만 환자들이 몰리는 것 또한 불친절 요인입니다. 하루 1백명이상 환자를 보는데 항상 웃으며 대할 수 있겠습니까.
▲양 교수=3차 의료기관에 환자들이 몰리는 것은 제도개혁으로 막아야 합니다. 의원급이나 가정의가 의료전달 체계의 구심점이 돼야지요. 1차 의료를 받지않고 환자 스스로 판단해 종합병원으로 직행하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상상 못할 일입니다. 국가가 개입해 의료전달체계를 확실히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못한 것은 보사부의 직무유기지요.
○대학병원은 연구를
▲이 부회장=대학병원이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연구활동을 제쳐두고 진료에만 열중하는 것은 기형적 현상이지요. 또 1,2차 진료를 거치지 않고 3차에 갈 수 있는 재활의학과·피부과 등 몇몇 진료과목에 대한 예외규정도 없애야 합니다.
▲송 교수=자주 사회문제가 되는 의료분쟁 역시 의료계 책임이 큽니다.
의료사고를 냈를 때 의사들이 정직해야 합니다.
이와함께 의료인들이 좀더 조심스럽게 약을 써야 합니다.
▲이 부회장=모든 시술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일부러 사고 내는 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최근에는 의료사고가 겁나 적극적인 진료를 못하는 예도 많습니다. 다만 사고났을 때 의사들이 일방적으로 변명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회원들에게 잘못한 것은 솔직히 시인하도록 유도하고 있지요.
▲양 교수=의료사고는 어느 나라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분쟁화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의료의 공공성이 약하고 환자가 의료인을 신뢰하지 않는 나라일수록 분쟁화되는 경우가 잦아요.
의료분쟁의 유일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1차의료를 활성화 하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송 교수=최근 의약품 납품을 둘러싸고 제약회사가 병원과 의사들에게 은밀하게 병원과 의사들에게 은밀하게 제공해온 사례비(랜딩비·리베이트 등)가 문제된 적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의료인이나 병원들이 이를 관행이라며 「그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양 교수=이들 사례비는 소비자측 부담을 증가시키고 세금포탈의 창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사가 학술대회 참가를 명목으로 제약회사 돈으로 부부동반해 해외관광을 가는 사례도 있어요.
▲이 부회장=지난해부터 의협산하에 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무면허 의료행위와 과대광고,의사의 품위 손상행위 등을 단속하고 있습니다만 의사들이 국민속에 좀더 파고 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의사단체만의 힘으로는 부족하고 의료계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민속에 거듭날때
▲송 교수=의료개혁이 성공하려면 의료인과 보사당국·소비자의 발상전환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의료인의 의식개혁이 가장 중요하지요. 이와 함께 의료인과 소비자간 자유스러운 의사소통을 위한 언로가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양 교수=지금까지 보사행정은 철학이 없었습니다. 여론이나 위정자에 따라 휩쓸리고 끌려다녔지요. 의료가 심각한 위기에 몰린 가장 큰 이유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의료를 기본권으로 보고 교육·환경과 같은 수준으로 정부가 나서 해결합니다.
마침 의료보장 개혁위원회도 활동중이니 공익성과 1차의료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의료제도와 보사행정이 과감히 변신해야 할 것입니다.<정리=이규연·정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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