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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자선에도 박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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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에이즈에 걸린 아기, 굶주린 원주민, 집 없이 떠도는 난민. 이들이 스타들의 필수 ‘액세서리’가 됐다.”

 얼마 전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유명 인사들 사이에 아프리카 돕기라는 새로운 유행이 등장했다고 비아냥대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그리 삐딱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몇 명이 무슨 일로 죽어 나가든 아무 관심 없던 게 세상 인심이었다.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가고, 록스타 보노가 가니 다들 관심을 갖게 됐다. 자연히 돈도 따라갔다. 일례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아프리카에 갈 때 늘 부자 군단과 동행하는데, 이 중 톰 헌터란 이가 2년간 내놓은 돈만 1억 달러(약 930억원)다. 사정이 이런데 명사들이 그곳 사람들 배경으로 생색용 사진 좀 찍는다고 손가락질할 필요가 있을까.

 순수한 이타심만 기대하고 있기엔 지구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이가 너무 많아 하는 얘기다. 해마다 아프리카 남부에선 5000원짜리 모기장이 없어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아이가 100만~300만 명이나 된다. 에티오피아는 전체 인구의 1.2%가 실명(失明)해 시각장애인 비율이 세계 1위다. 1000~2000원어치 약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기니벌레병(GWD) 때문이란다. 그러니 제 이름 알리려 나선 게 뻔한 ‘이기적인’ 자선에도 눈 질끈 감고 박수 좀 보내 주면 안 되겠나.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부자들이 좋은 일에 돈 쓰는 것에조차 별로 관대한 편이 아니다. 염불(자선)보다 잿밥(명성)에 연연하는 한낱 쇼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손끝이 닳도록 일해 번 돈을 익명으로 기부하는 ‘김밥 할머니’ ‘떡장사 할머니’에게 더 많은 찬사가 쏟아지는지 모른다. 물론 칭송을 바라지 않는 할머니들의 숭고한 마음씨는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하길 바라는 건 무리 아닐까.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는 전 역사를 통해 존재한 예가 없다”는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대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니 말이다.

 법을 어긴 한 대기업 회장에 대해 최근 법원이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공헌하라”며 8400억원을 내라고 한 판결을 놓고 여론이 분분하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했다지만 그가 옥살이를 면한 것을 두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입맛이 씁쓸해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국민 정서를 의식한 듯 검찰은 ‘부자가 돈 쓰는 걸 통상적인 사회봉사로 보기 힘들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 회장에게 남을 위해 돈 쓰는 기쁨을 제대로 배우도록 하면 어떨까. 그러면 나중엔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갑을 척척 열게 되지 않을까.

 전 재산의 85%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워런 버핏(버크셔 헤서웨이 회장), 2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자선재단을 만든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이런 외국 부호 얘기가 나오면 흔히들 혀를 차며 한탄한다. “왜 우리나라엔 저런 훌륭한 부자가 없는 거야”라고. 그런데 한번 뒤집어 보자. 아무리 부자라도 자기 돈이 아깝긴 매한가지일 터다. 그러니 돈을 쓰게 만들자면 의당 그 대신 얻는 게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다.

 예컨대 미국 대학 명칭 중엔 거액 기부자의 이름을 딴 것이 많다. 하버드대만 해도 상당한 책과 재산을 기부한 성직자 존 하버드를 기려 명명됐다. 우리 관념으론 설령 천만금을 냈다 해도 ‘김아무개대학’ ‘이아무개대학’ 한다면 거부감부터 들 것 같다. 하지만 껄끄러운 심정을 누르고 돈 쓰는 부자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때 우리도 한국판 버핏과 게이츠를 갖게 되지 않을는지. 박수 받기 좋아하는 건 동서고금에 두루 통하는 인지상정일 테니 하는 말이다.

신예리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