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한국 투자문화에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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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미래에셋 박현주(49·사진) 회장이 한국의 금융업계와 투자 문화에 쓴소리를 토해냈다. 17일 오후 한국공학한림원 주최로 열린 ‘세계화 시대 한국 금융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주제의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다.

 ◆“사람이 엉터리면 재앙 온다”=박 회장은 먼저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최근 국민연금을 예로 들었다. 그는 “국민연금의 경우 지금은 괜찮지만 과거 6년 동안 전부 채권만 사들여 물가 상승분만큼도 투자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사람이 엉터리면 재앙이 온다”고 비판했다. 그는 “채권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교과서대로 했다면 주식을 30% 정도 편입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분산 투자야말로 교과서적인 투자 원칙인데 국민연금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올 들어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6월까지 26%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국민연금 수익률은 6.39%에 그쳤다.

일부 부유층도 도마에 올랐다. 박 회장은 최근 과열된 미술품 경매·수집 바람을 예로 들면서 “미술품 가격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많이 올랐다”며 “일부 부유층이 화랑을 열심히 다니는데 돈을 잃을까 걱정스럽다”고 꼬집었다.

 ◆“M&A 규제 아쉽다”=박 회장은 “홍콩·싱가포르와 우리나라의 차이는 규제의 문제”라며 “특히 기업 인수합병(M&A)에 각종 규제와 장애가 있는데, 기업 M&A를 훨씬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금융 마인드를 갖고 일찍 세계 시장에 나가 M&A를 시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최근 한국 증시에 대해서는 “저평가 국면에서 완전히 벗어나 선진시장으로 진입하려는 단계”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간 한국 증시가 엉망이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며 “30개 종목으로 구성된 다우지수처럼 한국 증시를 산출한다면 지난 15년간 30배 정도는 올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또 한국 금융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했다. 과거 한국의 금융 산업은 제조업의 후방 산업으로 머물렀지만, 앞으로는 독립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투자에 대한 분석과 소신도 밝혔다. 박 회장은 “아시아,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적 자산 배분과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돈이 몰릴 가능성이 높은데도 홍콩의 자산 가격은 싸 보인다”며 “조만간 홍콩의 3000억원짜리 콘도미니엄을 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강연 말미에 박 회장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엄청난 시장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미래에셋이 아시아 1위 자산운용사가 돼 런던과 홍콩에 펀드를 상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의 고민을 홍콩서 푼다”=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시간에서 이공계와 상경계 출신 운용 인력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박 회장은 “서로 간에 큰 차이는 없으나 이공계 출신이 숫자에 강하고 집중력이 뛰어나지만 사고의 유연성은 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 평소 독서를 통해 영감을 얻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가끔 다른 환경에서 사안을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풀리는 경우가 있다”며 “서울에서의 고민을 홍콩에 가서 풀어 보는 식”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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