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조는 만능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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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산 소시지를 둘러싼 한미간의 마찰은 미국측이 슈퍼 301조의 적용을 검토하는 선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측의 이러한 강경대응자세가 한미간의 무역에 나쁜 선례를 남길뿐 아니라 두 나라 국민감정도 자극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의 유감을 표명하고자 한다.
미국측은 지난 3월말 보사부가 취한 미국산 소시지에 대한 압류·폐기조처가 수입억제를 위한 「새로운 규정의 신설,개정 또는 재해석」에 따른 것이란 견해이나 이는 사실과 어긋난다. 보사부가 지난 3월말 취한 조처의 법적근거인 식품공전의 규정은 이번에 문제가 되어있는 소시지의 수입이전은 물론,미국산 소시지가 대량 수입되기 훨씬 전인 88년 6월15일 제정돼 국내산 소시지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온 것이다.
또 미국측은 가열 소시지의 냉장유통을 30일로 정해놓고 있는 한국의 규정이 불합리하다는 것이나 유통기한을 언제로 하는 것이 식품위생상 안전하냐 하는 문제는 한마디로 결론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실제로 소시지의 보관 및 유통에 관한 규정은 나라마다,또 조건마다 천차만별이다. 미국의 기준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식품의 안전성을 고려해 유통기한을 정하는데 있어선 제조당시의 조건뿐 아니라 그 사회의 보관·운송·유통 등의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에선 90일까지 유통이 가능해도 한국에선 30일까지만 허용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조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까지는 정당한 권리이겠으나 무조건 미국의 기준이 옳으며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301조를 동원하겠다는 것은 일방적인 강자의 논리다. 백보를 양보해서 한국측 규정이 미국측이 보기엔 불합리한 것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규정을 개정해 달라고는 요청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에까지 소급해서 규정적용을 하지 말아달라는 식의 주장은 주권국가에 대한 무례다.
수년간 별다른 문제없이 수입을 허용하다가 갑자기 규제에 나선 점도 미국측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다. 그러나 보사부에 따르면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알고도 통관시킨 것이 아니라 수입업자가 「가열 냉장소시지」를 「비가열 냉동소시지」로 위장수입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탓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역소 직원의 무능이 문제이지 규정적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번 문제가 무역마찰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식품안전에 관한 과학적 견해차의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이번 문제는 두나라 식품관계자가 안전성을 놓고 견해를 나눠 해결할 성질의 것이지 무역상의 보복을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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